▲ 이철성 건양대 군사경찰대학장 |
2월에는 전설의 무희 최승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현대 무용에 조선의 전통춤을 덧입혀 신무용을 창안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여인. 그러나 친일 논란에 휘말렸고, 해방 후 월북했다가 비운을 맞이한 천재 예술가가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3월은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이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들에 미쳐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산다”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탄신 100주년을 맞아 성철 스님의 구도여정을 순례하는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성철 스님이 1939년부터 2년간 머물며 동·하안거를 했던 금강산 마하연도 방문할 계획이란 소식도 들린다.
4월 15일은 태양절인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다. 남한에서는 4·11 총선이 예정돼 있어 정국이 술렁이는데, 남북 간의 대화는 제자리걸음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안정을 위해 남북 긴장 관계를 조절하면서, 국제사회와의 교류와 정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 노력을 펼치고 있다.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순례 행사가 한반도의 평화를 불러오길 바란다면 너무 낭만적인 바람일까.
5월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탄생 100주년이 된다. 26대 임금, 고종의 고명딸 탄생. 암울한 왕실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1919년 여덟 살에 고종이 죽고, 일제의 요구로 1925년 일본으로 갔다. 조선 황족으로서 일본 유학 내내 모멸과 독살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쓰시마번주 가문의 한 청년에게 시집을 가야 했던 덕혜옹주의 삶은 국권 상실의 아픈 기억으로 자리한다.
7월에는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고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서정시인 백석(백기행)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다. 그는 일본 유학을 하고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모던 보이였지만, 투박한 북방 사투리로 토착적 서정을 노래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아동 문학 논쟁이 일어났을 때 계급적 요소보다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다가 북에서 잊힌 백석. 순수 서정 시인의 향토색 짙은 맑은 시어(詩語)가 복잡한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9월에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라고 노래한 한국 근대사의 대표 여류시인 노천명이 출생했다.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친일작품을 남기고 6ㆍ25전쟁 당시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투옥되는 등의 굴곡은 급변하는 근대를 살아온 한 인생사로, 우리 모두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고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탄생도 꼭 100년이 된다. 당시 인간이 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마의 2시간 30분대를 넘어선 기록. 그러나 우승자는 만세도 하지 않았고 환호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운동화를 벗고 고개를 숙인 채로 퇴장했던 우울한 우승자.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유품이 올해에는 문화재로 등록돼 독립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자료로 우리 곁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탄생 100주년은 한 개인에겐 이미 지나간 삶의 흔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복잡한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요, 실타래처럼 엉킨 현안 문제를 푸는 모범 답안이며, 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끌어 주는 가늠자로써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교훈이 된다. 우리 모두 역사 속 인물 탄생 100주년의 의미를 되살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