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대처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명과 암이 뚜렷하다. 70년대 말 불황에 허덕이던 영국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감히 도입해 나라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 반면 그로 인해 빚어진 빈부 및 지역 격차 문제는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받는다. '풀 몬티', '빌리 엘리어트'는 '대처리즘'에 희생된 영국 노동자와 실업자의 고단한 삶을 다룬 영화다.
'철의 여인'은 대처를 둘러싼 정치적 평가에는 한발 비켜선다. 다만 그녀가 '소신 있는 정치가'임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소신대로 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고, 정치에 뛰어들었고, 청혼 받는 자리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찻잔이나 닦으면서 살 수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대처는 소신을 펼치고자 한 독립적인 여성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다우닝 10번가'의 11년을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삶”이었다고 들려주는 대처.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익집단 여론조사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강인한 리더십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지도자 선출을 앞둔 우리가 곱씹어 볼만한 대사들도 있다. “이 시대 위험한 일은 사상이나 이념보다도 (유권자)기분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거예요. 표만 좇는 철새들, 나약한 인간들”, “용감한 자만이 핸들을 잡을 수 있어요. …누군가는 할 말을 해야죠. 그들은 배짱이 없어요. 당이 지켜가야 할 규칙을 알려줘야죠” 등등.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는 분명 흥미를 끄는 소재지만, 영화를 보고 싶게 이끄는 건 역시 '대처의 아바타'란 평가를 받는 메릴 스트립이다.
코를 만들고 보철과 가발로 꾸몄다지만 메릴 스트립은 당장 외모에서부터 대처의 현신임을 드러낸다. 영국식 발음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대처의 말투와 습관을 모사하는 건 기본. 동료 의원들이 비아냥대는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근엄하게 바꾸어 보수당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은 스트립의 몸을 빌려 생생하게 재현된다.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뉴욕비평가 협회 시상식 등 여우주연상 5관왕에 빛나는 연기다.
식료품점에서 우유를 사들고 와서 남편에게 “우유 한 팩에 49센트나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데, 돌연 남편은 사라지고 대처 홀로 남겨지는 첫 장면, “찻잔이나 닦는 삶을 살 수 없다”던 그녀가 찻잔을 닦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를 본 후, 문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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