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배재대 총장 |
학자금대출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빚더미에 눌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기껏해야 월 88만원을 버는 것이 고작인 꿈꾸는 미래가 불안한, 비정규직의 수렁에 빠진 혹은 빠져버릴 젊은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은 연민이거나 죄책감일 것이다. 특히 졸업식이 있는 날은 더더욱 그렇다. 학사모를 눌러쓴 이 많은 젊은이 중에 불안이나 초조를 밤새 곱씹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이 시대의 전도양양한 푸른 젊음이 가져야할 의무사항이 불안과 초조일 수밖에 없는가. 아무리 젊은 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고생도 겪기 전에 체감해버린 현실의 높은 벽으로 인해 겁부터 지레 먹은 모습은 아닌지. 정말 그들의 말로 하자면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넘사벽)은 아닌지. 현실은 수십만의 축을 가지고 불안정하게 존재하므로, 그리고 그 높이 또한 어마어마하므로 내가 넘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 그리고 희망을 쉽사리 가질 수 없다는 주저함이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스승이라면 응당 풀이 죽은 제자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미래를 응원해주며 세상은 그리 높은 벽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줘야 하건만, 요즘 세상은 너무나 높은 벽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 세대가 젊음을 격을 때만해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의 학생들이 특별히 모나거나 자신의 꿈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사각의 학사모 밑에 감추어진 아주 깊고 슬픈 두 눈이 아프게 다가온다.
사실 졸업은 결실보다는 해방의 어감이 강하다. 그것은 가르치는 자들이나,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나 똑같은 일일 게다. 요즘의 시대를 아무리 비판하고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고 외친다고 하더라도 오늘의 졸업식을 따스한 봄날로 미룰 수는 없다. 젊음의 봄날은 억지로 미룬다고 더디 오는 것도 억지로 당긴다고 빨리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젊음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머지않아 분명 그들에게는 봄이 올 것이다. 나는 그들의 스승으로서 그들을 전력을 다해 믿을 것이다. 학사모의 술을 넘기는 것은 그들에게 넓은 세상에 나아가 비상하라는 자유를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들의 꿈과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온전히 그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 옛날 로마의 노예들이 자유를 얻어내며 썼던 술이 달린 사각모처럼, 이 창창하게 빛나는 학생들은 자신의 힘으로 그 어려운 배움을 다 해내고 이제 자유 앞에 당당히 선 것이다.
삼포세대라든지 88만원세대라든지 하는 불우한 이름들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모자, 학사모를 쓴 제자들을 바라본다. 어디에 불안이 숨어있다는 말인가.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꽃 같은 미소를 짓는 젊은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다. 사회의 벽이 아무리 단단하고 높다 해도 그들은 넘어갈 수 있으리라. 젊음이 겪는 좌절과 역경을 너무 쉽게 절망으로 읽어내지 말자. 우리들의 젊은이는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우직할 것이다. 우려보다 응원이 그들을 더욱 높이 날게 할 것이다. 학사모를 던지는 손끝에 희망이 가득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