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일생,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오트웨이는 설원과 설원에 흩뿌려진 비행기 잔해와 시신들, 그리고 6명의 생존자와 마주한다. 오트웨이는 알래스카 석유시추 현장에서 인부들을 보호하는 프로페셔널 가드. 그는 생존자들을 이끌고 극한의 눈 지옥을 탈출하려 한다.
'더 그레이'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한 사내의 의지를 그린 생존기다. 그간 보아왔던 조난 생존기를 떠올리진 마시길. 위기를 극적으로 극복하는 인간승리의 희열감은 이 영화엔 없다. '비는 내렸다하면 억수로 퍼붓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재난이 한꺼번에, 쉴 새 없이 몰아친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설원. 영하 섭씨 30℃의 살인적인 추위. 추위를 피했다 싶으면 배고픔이 엄습하고, 배고픔을 이겨내면 늑대가 공격해 온다.
죽음의 공포와 마주할 때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단단해진다. 사실 오트웨이는 자신의 삶이 지옥이라고 여겼었다. 영화 초반 헤어졌는지 죽었는지 분명치 않지만 아내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그는 자신의 현실이 지옥이라며,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들려준다. 그랬던 그가 살아있는 게 오히려 고통스러운 극한의 상황과 맞서 싸운다. 자신과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늑대와 부둥켜안고 싸운다.
어렸을 적, 시를 즐겨 읊던 그의 아버지가 직접 써줬다는 시. “한 번 더 싸워보세. 마지막으로 폼 나게 싸워보세. 바로 이날 살고 또 죽으세”라는 구절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도 죽음과 마주하는 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진행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리암 니슨의 공이다. 부드러운 이미지에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 호소력 짙은 내레이션은 영화에 활력과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조 카나한 감독의 연출도 돋보인다. 극사실적인 묘사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풀어줬다가 다시 죄는 솜씨가 탁월하다. 카나한 감독은 'A특공대'에서 보여줬던 몰아치는 액션을 몰아치는 재난으로 바꿔놓았다. 그 덕에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가 극적으로 살아났다.
'에이리언' '글래디에이터'를 만든 리들리 스콧과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토니 스콧, 형제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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