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계 형사 은영. 수컷들이 지배하는 형사 세계에서 신출내기 여형사는 서성거린다. “애교라도 떨어보라”는 선배들의 농 짓거리도 “죄송하다”는 말로 꾹꾹 눌러 참을 뿐. 파트너는 상길. 번번이 승진에서 밀린 만년 고참이다. 둘이서 연쇄살인사건을 쫓는다.
헛다리 짚는 수사로 웃음을 뽑아내던 영화는 사체에서 짐승의 이빨 자국이 발견되면서 긴장감 속으로 이끈다. 이빨 자국의 주인이 늑대와 개의 혼혈인 늑대개로 밝혀지는데…. '하울링'은 독특한 범죄 수사물. 하지만 장르적 쾌감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영화는 '범인 찾기'라는 본질적 형식보다 인물들이 빚어내는 내밀한 감정 변화에 초점을 둔다.
사실 은영은 평범 수준의 당찬 여자다. 술자리에서 스킨십을 하려는 선배에게 “좋게 말할 때 손 내려 놓으세요”라고 강단 있게 말하는 장면 이후 영화의 주도권은 그녀가 쥔다. 남자 형사들이 “나가 있어. 여긴 네가 끼어들 세계가 아니야”하고 밀어내도 밤거리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며 연쇄살인의 중심부로 홀로 뛰어든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세상 편견과의 싸움은 그녀에겐 버겁다. 영화는 이처럼 세상에 속해 있고 속하고 싶지만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의 외로움을 그린다. 은영이 그렇고 상길도, 늑대개도 마찬가지다. 늑대도 아닌 개도 아닌….
늑대개 '질풍이'의 무자비한 포악함에 치를 떨다가도,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질풍이가 처연하게 다가오는 지점도 바로 거기다. '피해자는 가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 또한 피해자다'라고 들려주는 이 영화의 끝엔 눈빛만 기억에 남는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질풍이의 눈빛. 어떤 배우 못지않은 늑대개의 뛰어난 감정연기가 관객들의 가슴을 흔든다.
주변을 서성거리기는 영화도 똑 같다. 범죄 수사물이지만 장르적 치밀함보다 곁가지에, 서스펜스보다 경계에 선 주변인들의 페이소스에 더 공을 들인다. “주변부에 살아가는 경계인에 대한 관심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유하 감독의 성격과 어울리고, 감성적 변주를 통해 기존의 범죄물과 차별화를 꾀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재미가 좀 없다.
여형사 캐릭터를 새로 구축한 이나영의 연기도 좋고 뒷받침하는 송강호의 연기도 두말 할 것 없이 노련하다. 유 감독의 섬세한 연출도 돋보인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늑대개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는 각자 빛나는 구슬이지만 현실의 부조리로 이어지려면 정교한 사슬로 묶였어야 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송강호란 걸출한 배우가 있어도 상길을 좀 줄이고 은영의 캐릭터에 더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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