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다른 스포츠는 괜찮을까?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 때 들었던 똑같은 말을 또 듣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 경험한 듯한 이 기분 나쁜 기시감(旣視感)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축구보다 나중 터졌으나 기실 축구보다 먼저 조작됐다. 배구로서 첫 조작이 아니라 돈을 미끼로 한 프로스포츠 최초의 승부조작이다. 배신감은 더 커진다. 현재로선 그렇다.
'가장 정정당당하지 못함'에 대한 이 기록은 따라서 언제든 깨질 수 있다. 구석구석 부패 둔감의 감각이 드리워진, '절대 부패를 겨우 벗어난 수준'인 국가의 선험적 부정부패를 스포츠 세계가 뒤집어쓰고 있어서일까? 그걸로 일부 배구선수의, 배구선수였던 자의 썩어빠진 정신을 재는 자가진단 키트로 삼을 수 있을까?
그보다 V리그의 부정은 뚜껑이 막 열린 판도라의 상자에 지나지 않는다. 쌍둥이 형제뻘인 K리그와 V리그의 조작은 닮았다. 세트 수가 있고 점수가 많이 나는 배구 쪽이 베팅 방식에서 세분화되고 조작이 현란한 면은 있다. 전주(錢主), 브로커, 선수가 공동 출연하거나 선수끼리 베팅하는 방식이거나 부정이란 점에서 한가지다.
가슴 아픈 것은 수사 진행 중에(지금도 진행 중이다), 리그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는 판에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속개된 프로배구 V리그를 보는 것이었다. 전 시즌, 문제의 승부 조작을 한 그곳에서 선수들이 사과 인사를 하는 애처로운 모습이 포착됐다. 수비력이 뛰어난 '리베로'가 고의 실수로 세트스코어 1-3패를 도왔던 그 현장이었다.
바로 그때 져준 대가로 선수는 돈을 챙겼다. 그러고도 다들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1000곳이라는 둥 딴죽에 오리발이다. '불을 때다'와 '연기가 나다'는 이치가 같다. 하나는 원인, 하나는 결과다. 새파란 학생 선수 시절의 불법 베팅, 학생 스포츠의 승부조작, 그 존재를 몰라 호들갑인가? 자기정당화의 덫에 두 번 걸리려는가?
프로축구 조작으로 떠들썩할 때 들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의 말을 기억한다. “승부조작 단순 가담자는 죄책감에 시달리나 반인격적 주동자는 스릴을 느낀다.” 어쩌자는 얘기인지? 적절한 죄책감과 부적절한 죄책감을 구분하자는 것인지, 그러니 닥치고 반성하라는 경고인지, 학습된 죄책감인지 의심해 보자는 것인지? 이 상황에서는 말장난 같다.
승부조작? 물동이 호밋자루 내던지고 바람난 동네처녀 연애담처럼 알 만한 비밀 아니던가? 중간 단계인 수사에서 누가 가담했다, 누구도 했다더라는 의혹과 정황은 묘하게도 잘 일치한다. 대전이 배구의 메카라는 수사, 대전이 낳은 걸출한 스타도 연루됐다는 것, 연루 선수가 KEPCO, 상무 소속인 것은 차라리 덜 중요하다. 삼성화재 또는 현대캐피탈 등이 대전·충남 연고 구단인 사실도 말하려는 본질과 거리가 있다. 분명 승부조작은 일부의 잘못이다. 하지만 부분 없는 전체 있는가? 돈 앞에서 정신줄 놓은 배구계를 깨끗이 털고 가려면 단순히 '꼬리 자르기'로는 도움이 안 된다. 부정방지 워크숍이니 비리근절대책위원회니 하는 개그 프로그램 수준의 수작은 그러니 집어치울 일이다.
인정과 상벌은 또 다르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의 중도일보 인터뷰 멘션을 여기 옮긴다. “스승의 처지에서 스스로 잘못을 고백한 선수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이 내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 소속팀에서 승부조작 '작업'에 가담했다는 소속 선수의 자진신고와 관련해서다. 지도자로서 따뜻한 인정이다. 해법은 물론 달라야 한다.
달라야 프로 전체가 산다. 지난해 배구 쪽을 의심했듯이, 다음 차례가 야구와 농구 쪽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구체화한 '첫 회 볼넷', '3점슛' 조작설이 나돈다. 이번 사태도 수차례 경고 끝에 터질 것이 터지고 만 것이다. 아니길 바라나 착잡하다. 4대 프로스포츠가 민망하게 오르가슴 부전처럼 부패를 못 느껴서는 아닐까? 진짜 이유부터 찾는 게 핵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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