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민희 기자 |
대전 5개 기초의회에 63명의 구의원이 있으나 우리는 이들의 의정생활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그들도 주민들의 투표를 받아 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사회의 관심은 서울 여의도에 쏠려 있고 기껏 시의회 정도까지 희미하게 닿는 정도다. 그나마 신문지상에 기초의회 이름으로 거론되는 일이라고는 의정비 인상, 호화 해외연수, 동료 고소 고발 등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대부분이다. '기초의회=생활정치'라는 수식어는 빛이 바랜 듯하다. 그래서 기초의회 의원이지만 서로 마주칠 일이 없던 두 남자를 한 장소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기초의회가 부활한 1991년부터 의원직을 시작해 현재까지 21년간 기초의회를 지키고 있는 6선의 중구의회 윤진근 (61)의장과 잘나가던 여행사를 접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국 두 번째 최연소로 당선된 유성구의회 이은창(29) 의원이 그들이다.
지난 10일 오후 서대전시민광장은 막바지 겨울이 몰아치고 있었다. 현실과 맞지 않는 의정비에 따른 생활에 대한 고민부터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됐다.
“한때 폐기물처리공장도 운영했지만, 의원이 되고서 그만뒀습니다. 기초의회 의원이라고 해봐야 의정비는 박봉이지 챙겨야 할 애경사는 얼마나 많은지, 의원들이 생활하는데 한계를 느껴 이권 개입 등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비록 명예직으로 시작했지만 주민들의 민원사항을 듣고 활발한 활동을 하려면 의원들에게 어느정도 수준의 의정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빚을 내서 의원직을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윤진근 의장(이하 윤)은 어렵사리 의정비 문제를 꺼냈다. “지난해 우리 의회서 의정비 인상을 논의할 때 개인적으로 인상에 반대했습니다. 주민들이 반기지 않는데 의원 의정비를 올릴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적은 의정비에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정치를 계속 하겠다는 의지는 굳었지만, 생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할 지 방법론적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은창 의원(이하 이)도 응수했다. 한겨울 야외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무리였다. 추운 날씨때문에 휑한 공원에서 더 이상 인터뷰는 곤란했다. 산만한 분위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중구의회 의장실로 자리를 옮겨 조금 따뜻한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기초의회에 대해 짚을 무거운 주제가 남아있었다. 직접 질문을 던졌다.
-시민들이 기초의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겨울처럼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윤진근 의장 |
이=의원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데 공감하지만, 자리잡지 못한 지방자치제의 복합적 문제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지방자치제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지역사회는 여전히 서울과 중앙에 집중돼 있습니다. 지방자치 20년이 되도록 구의회가 업무를 통해 주민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언론은 중앙정치에만 관심을 쏟고 주민들도 먹고사는데 바쁘다 보니 구의회는 관심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역할을 못하는 지방자치제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이번에는 기초의회 정당공천제에 대해 물었다. 2006년부터 기초의회에도 정당공천제가 도입됐다.
-말 그대로 기초의회는 동네정치이자 풀뿌리민주주의를 하는 곳인데, 정당이 필요하냐고 말들이 많습니다. 혹자는 기초의회가 정당끼리 편을 나눠 상대 의원을 헐뜯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윤=기초의회에 정당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초의원은 말하면 골목정치인으로서 주민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일인데 정당 공천은 선거 때만 작동합니다. 기초의회가 정치적 이념으로 뚜렷이 나뉘는 곳도 아닙니다. 또 선거구도 여러 동네를 묶어 기초의원 2~3명을 뽑다보니 의원으로서 느끼는 주민들에 대한 책임감도 줄었다는 게 솔직한 제 느낌입니다. 쉽고 표시 나는 일은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어렵고 표 안 나는 일은 다른 의원을 찾아가보라고 손사래 친다고 할까요. 기초의회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정당정치를 배제하고 소선거구제를 해야한다는 게 오랜 의원 경험에서 배운 생각입니다.
▲ 이은창 의원 |
-이은창 의원은 지난 2년간 부딪쳐본 기성정치를 어떻게 평가하나요? 윤진근 의장은 시의원이나 단체장에 도전할 기회를 만들 수 있었지 않았나요?
이=많은 선배들이 개인의 출세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하기 위해 정치를 하다보니 주민들이 원하는 의원상과 초점이 맞지 않았다고 봅니다. 주민에게 하는 말과 뒤돌아 하는 행동이 전혀 다르거나 행정사무감사에서는 내가 선이고 집행부는 악인 양 가르치려 드는 경우를 보게되는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그러한 모습이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윤=시의원이고 단체장이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나의 의견이지 주민들의 생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너 한번 해봐라”할 때 할 수 있는데 주민들에게 아직 기회를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되면서 기초의회 의원생활에 흔들림 없이 잡아주는 버팀목은 무엇인지 물었다. 윤 의장은 2007년 장성한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 의원은 22살때 아버지를 잃었다.
윤=아들이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하다 팔에 마비가 와 병원에 입원시키니 백혈병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군에서 재촉해 제대했고 그 후로도 아들은 6~7년을 병마와 싸우며 대학 졸업까지 했지만, 결국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들이 지금은 6명의 다른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해 어디선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위안이 됩니다.
이=정치에 뜻을 두는 데는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22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집은 아버지 사업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변화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공주에서 사업을 하던 중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5건의 소송을 치르는 기간동안 저와 어머니 모두 굉장히 어렵게 보낸 시기였습니다. 모두 마무리하고 대전에 올라온 게 2007년이었고 그때 경험으로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신념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담=이승규 사회부장(부국장)·정리=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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