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영화의 향취가 물씬 난다. 광활한 평원과 파란 하늘이 한 컷에 잡힐 땐 존 포드 감독의 스펙터클 서부극, 석양을 배경으로 한 실루엣 장면에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감흥이 살아난다. 디지털과 테크닉이 판치는 스크린에 클래식이라니. 가슴 저릿한 감동이 인다. '워 호스'는 전쟁에 차출된 '군마(軍馬)'가 들려주는 감동스토리다.
영화의 주인공은 말과 소년. 말 조이가 전쟁터에 끌려가면서 헤어졌던 친구이자 주인인 앨버트와 다시 만나기까지, 그 여정이 기둥줄거리.
포탄이 터지고 화염이 치솟고 굉음이 지축을 흔드는 전장(戰場)에서 말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서로를 죽이고 죽여서 뭐를 얻겠다는 것인가”하고 한탄했을까. 조이의 시선은 전쟁의 참혹상엔 별반 관심이 없다. 대포 공격에 말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참담하고 가슴 먹먹한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조이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 건 동료들, 그리고 그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다.
적진 돌파를 감행하는 장교, 동생을 구하려는 한 소년 병사,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프랑스 소녀, 혹독한 전투 중에도 조이를 지키려는 조련사 등 인연 맺은 이들의 이야기를 조이는 껌벅이는 눈으로 전한다. 눈빛만으로 전쟁의 비극, 전쟁에 대한 경고 그리고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용기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 희망의 힘을 들려준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힘을 합쳐 철조망에 갇힌 조이를 구조하는 장면에서, 철조망을 친친 감은 조이가 앨버트를 향해 달려갈 때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말없음으로 더 진한 감동을 전하는 방식. 외계인과 소년의 교감을 그린 'E.T'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다. 용기 사랑 희망 우정 가족애 같은 고전적이면서 불멸의 가치를 전달하는데 클래식은 꽤 잘 어울린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CG 등 특수효과를 최대한 배제해 흥취를 한층 살린다. 조이 역에만 대역마(代役馬) 14마리를 사용해 사실적인 영상에 공을 들였다. 꾸미지 않은 덕분에 즉각적으로 전해지는 감동의 파고가 세다. 특히 조이의 연기는 어느 연기자보다 인상적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수상을 꿈꿨을 것 같다.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찍었던 야누시 카민스키에게 카메라를 맡긴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카데미가 유독 전쟁영화를 내놓을 때만 스필버그를 작가로 여겼다는 점도 기억하자. 올 아카데미상에 '워 호스'는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하지만 따져보자. 주요 부문은 작품상뿐 나머지는 음악 촬영 미술 음향 특수효과 등이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과 촬영 덕분에 좋은 작품이 된 것이지 연출과 연기는 “글쎄”라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디지털, CG, 3D 등 너도나도 테크닉을 자랑하는 이 시대에 클래식의 감흥을 살려 영화를 찍을 감독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오롯이 필름으로 말이다.
'워 호스'는 스필버그가 거장임을 새삼 확인시키는 영화다. 필름의 매혹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영화이고 그래서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하는 영화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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