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
산디마을탑제는 마을입구에 서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탑에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열흘 전부터 마을사람들이 모여 제를 주관할 고양주를 뽑고 각자 역할을 나눈다. 제에 필요한 경비는 쌀과 과일, 돈 등 주민들이 십시일반 한다. 경비가 많이 모아지면 제물을 넉넉히 장만하지만 그렇지 못한 해는 적게라도 성심을 다한다.
그런데 올해 탑제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정월 열 나흗날인 지난 5일 열린 탑제는 대전시의 무형문화재 전승기록화사업에 선정돼 원형에 가깝게 치러졌고 책과 영상물로 기록됐다. 20여 가구 주민들이 총동원돼 새끼를 꼬고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엄동설한에 고양주는 마을 위 옻샘에서 찬물로 목욕재계도 서슴지 않았다.
노인들에게는 한데서 목욕하고 종일 새끼 꼬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게 시에서 주는 보조금 300만원을 받기 위해 시청까지 서류와 도장을 들고 수차례 오가는 일이었다.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젊은이가 있다면 쉽게 될 것을 주민이래야 70~80대 할아버지, 할머니뿐이다 보니 직접 시청까지 오가는 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는 구제역을 이유로 이마저도 못 받았지만 기록물을 만드는 올해는 제물준비에 더 신경을 써야하니 300만원을 마다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산디마을에서 1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큰 행사이기 때문에 이 돈으로 어림도 없지만 노인들만 살다보니 전처럼 경비를 모으는 일이 여의치 않아 시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데 시에서 무형문화재 공개행사비로 주는 300만원을 사용하는 일이 노인들로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보조금 명목으로 주는 돈이어서 행사 후 정산을 해야돼 지출도 카드로 하고 영수증도 챙겨야한다. 그러다보니 동네주민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팔아줄 수 없어 카드결제기가 있는 장동고개 너머 대형 슈퍼마켓까지 나가야 한다.
전통방식 대로 제사에 쓸 술을 빚고 떡을 찔 수도 없다. 집에 있는 누룩과 쌀로 술을 빚고 집에서 떡을 찌면 영수증 처리를 할 수 없으니 카드결제가 가능한 슈퍼마켓과 떡집에 가서 사다 써야한다.
거동이 불편한 70~80대 노인들이 장을 보기 위해 시내버스로 고갯마루를 넘나들며 불평을 쏟아낸다. 대전시의 지원 없이도 주민들이 조금씩 모아 수백 년 탑제를 지내왔건만 무형문화재 지정해 몇 푼주면서 사업계획 세워라, 보조금 정산해라, 카드로 결제하라는 등 요구가 까다롭다는 것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소박하게 제를 지낼 테니 차라리 보조금 주지 말고 탑제에 오지도 말라고 역정 내는 노인도 있다.
충남도는 산디마을탑제같은 단체종목 무형문화재에 대해 780만원의 공개행사·전승장비지원금을 준다. 대전시와 같은 보조금 형태지만 무형문화재 보유단체 회원들이 대부분 노인이고 시골지역인 점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들을 짜내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대금을 계좌이체하든지 카드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입증자료를 첨부하거나 안되면 직접 정산까지 해준다.
평생 신용카드 한번 써본 적 없는 팔순노인들에게 카드사용을 요구하는 대전시는 법 테두리 안에서 현실적인 보조금 지급방안을 찾아야한다. 현행 보조금 대신 전승지원금 형태로 전환한다면 노인들이 초 두 자루 사러 고갯마루를 넘나드는 불편은 없을 것이다. 마을에 젊은이가 없어 문화재인 탑제를 언제까지 전승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인 전통 민속마을에 보조금 정산부담은 너무 가혹하다.
80대 노인들에게 카드사용을 강요하는 대전시의 보조금 지급방식은 주민과 관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주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 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민이 편안해야 좋은 정책이다. 해결방법이 전혀 없다면 모르겠지만 대안이 있다면 이를 시급히 적용해 대전의 무형문화재가 제대로 전승 보전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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