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私學), 의미 그대로 사인(私人)이 설립한 학교다. 한반도 사학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당나라 역사서, 당서 唐書에 등장하는 고구려 경당이다. 국가 교육기관만큼이나, 사학은 뿌리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당대도 마찬가지다. 사학은 대한민국 공교육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을 이끈다는 평가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공공성 못지않게 사학을 지탱하는 힘은 자주성이다. 공공성과 자주성이라는 양대 축을 토대로 대한민국 교육을 이끌고 있다. 중도일보가 지역언론 최초로 사학재단을 조명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도일보는 대전교육청과 함께, 대전지역 사학재단 기획시리즈를 마련해 태동과 건학이념을 중심으로 사학에 대한 인식 변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명석고등학교 전경 |
#배우고 싶었을 뿐이다
유명학원, 그 첫 시작은 배우고자 했던 열망이다. 단지, 배우고 싶었지만 배움을 허락하지 않았던 그 시절, 그 아픔에 대한 기억이 유명학원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오래되진 않았다. 1982년이니, 이제 30년 됐다. 시작은 이랬다. 설립자인 박주석(朴柱錫·74) 박사는 충북 청원 강외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박 박사의 부친은 박재명((朴在明·93) 유명학원 이사장이다. 아들인 박 박사가 설립한 재단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돈이 너무 없었다. 부친인 박 이사장은 돈이 없어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가난이 대물림되면서 박 박사 역시 시련에 시련을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청주상고를 입학했다. 그리고 경희대 약학과와 원광대 한의대학원을 졸업했다.
#약국을 선택하다
약국을 선택했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연기군 전의면에 둥지를 틀었다. '유명약국'이었다. 몇 평 되지 않는 조그만 약국이었지만, 유명학원 역사의 태동이 시작된 곳이다. 그때가 1964년이다. 당시만 해도 약사는 조제는 기본이고, 진료와 처방, 약재 판매 등 모든 게 가능했다. 간과 폐질환 전문 약국으로 소문이나면서, 손님이 너무 많아 인근의 여인숙은 북새통을 이뤘고, 특급열차까지 허름한 역에 멈췄다. 고 박노식씨 등 인기 영화배우에서부터 일본 나카소네 전 총리까지 찾을 정도였다. 의약분업을 계기로 화려했던 유명약국의 역사는 전설로만 남게 됐다.
#대전에서 불을 지피다
시골 한구석에서 이룬 작은 기적은 유명학원 탄생의 불씨를 지폈다. 배우고 싶었지만, 배우지 못했던 부친의 한(恨)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박 박사는 주저하지 않았다. 약국으로 쌓은 재력을 교육사업에 쾌척하기로 했다. 대전으로 향했다. 유명학원 설립 즈음, 대전의 팽창도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간절히 원했던 사학재단은 1982년 설립됐다. 유명약국을 이어받은 유명학원이었다. 학교는 재단 설립 2년 후인 1984년 처음 문을 열었다. 바로 '명석고등학교'(明錫高等學校)다. 1987년쯤에는 대학 설립에도 나섰다. 현재 대덕구 신탄진과 충북 청원 인근 부지까지 찾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심지어 핵심 권력이 투기 혐의라는 누명까지 씌울 태세로 나서 결국, 건학의 꿈을 접었다.
#덕불고필유린(德孤必有隣)
논어(語) 이인편(里仁篇)에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의미다. 유명학원은 덕(德)의 가치를 내세운다.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원만한 인격과 품성을 바탕으로 자아실현에 힘쓰며 나아가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유능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건학이념을 위해 강조하는 게 바로 덕(德)이다. 흔히, 산업화와 핵가족화 등 인간 소외와 개인주의로 이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명학원은 덕(德)이라고 말한다. 효열장학회도 그런 의미에서 세워졌다. 효열부 칭호를 받은 증조모의 장례 부의금 전액을 장학회 설립에 내놓으면서 현재 매년 70여 명의 학생에게 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비전을 말하다
30주년을 앞둔 유명학원이 비전을 준비하고 있다. 급변하는 교육여건 속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자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희망과 봉사, 열정 등 세 가지를 비전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현재 돌파구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기본을 강조한다. 기본이 있어야 변화할 수 있고,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성원들의 자신감도 요구한다. 강한 사학을 위해선 강한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설립자의 아들인 박한수 명석고 교장은 “건학 이념을 실천하며 사학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왔다. 대한민국 교육을 이끌왔던 만큼, 이젠 세상 밖으로 나와 변화하는 사학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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