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정 대전문화산업진흥원장 |
어릴 적 불렀던 달맞이 동요가 콧노래로 흥얼거려지는 대보름이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눈썹달 반달… 달은 변하는 모양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혹시 본명이세요?” 배우 생활 30여 년간 자주 듣던 질문이다.
또는 “이름만 듣고 여자인 줄 알았네” 이렇게 직접적인 표현을 하는 이도 적지 않다. 물론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려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아무래도 '효정'이란 이름이 이 땅에선 주로 여성들을 호칭하는데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한다. 데뷔 초기엔 개명을 권하는 이도 적지 않았고 전략적으로 이름을 고수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의 훈수에 개의치 않고 쉰이 넘도록 자칫 소녀로 오해받기 십상인 '효정'이란 이름을 문패로 걸고 사는 이유는, 우선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에 대한 작은 효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일찍 작고하셨지만 늘 공부하는 뒷모습을 내게 보여 주셨던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 당연히 지켜왔지만 내심 '개명(改名)'의 유혹에 흔들렸던 적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남성적인 이름이거나 지적인 이미지의 이름, 또는 만복이 가득할 것 같은 이름으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하지만, 잠시의 흔들림은 이내 가라앉았고 지금껏 '효정'이란 이름으로 반백년을 살고 있다. 가끔 생각해 본다. 그때 이름을 바꾸었더라면 내 삶 역시 바뀌었을까? 더욱 더 남성적이고, 더욱 더 지적이며 보다 만복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까?
해가 바뀌어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희망을 품고 한 해를 시작하는 이즈음 이런저런 '개명(改名)'에 얽힌 사연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나름의 까닭과 나름의 희망과 각오로 빚어 낸 '새 이름'이 많은 이야기를 빚어내고 있다. 그만큼 '이름'이 세인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우리 삶의 주변엔 참으로 다양한 이름이 있다. 듣고 부르는 이들에게 단박에 친근함과 신뢰를 주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대뜸 우스꽝스런 연상을 하게해 주변의 놀림감이 되는 이름도 있다. 허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명명되든, 어떠한 연유로 무엇이라 불리든 간에 그 이름을 문패로 걸고 사는 이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가가 결국 그 인물의 가치를 정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혹자는 이름을 바꾸면 인생 또한 바뀐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과연 새 옷을 갈아입듯 새로운 이름으로 세상에 나서면 세상 또한 새로운 눈으로 새사람인 듯 그를 맞이해 줄까?
결국, 답은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새로운 목표 설정과 그에 따른 치밀한 실행 계획에 따라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자기 혁신의 세신 과정을 거쳐 세인들에게 불리고 싶은 이름에 걸맞은 새로운 내면과 외면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세상은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불러 줄 것이다. 그만큼의 인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리라.
먼 산위로 둥실 떠오를 정월 대보름의 만월을 기다리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30여 년을 '배우'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다가 '문화산업진흥원장'이라는 새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세상에 발을 뗀 지금, 나는 과연 어떠한 자기 혁신의 세신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설정한 목표가 정말 옳은 것인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걷는 것일까?
지난 시절의 안일함과 나태한 공상일랑 빈들에서 달집을 태우듯 가슴속에서 불살라 지우고서 새로움의 시작은 늘 내 안에서부터, 작으나마 자기 혁신의 가열찬 꿈틀댐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소중한 명제 하나 가슴에 안고 정월 대보름의 만월을 맞이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대로 가슴에 손을 모아 빌어본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새로운 꿈들이 아름답게 열매 맺도록 지켜 도우소서~! 달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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