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희]가짜가 넘쳐나는 세상

[임석희]가짜가 넘쳐나는 세상

저급한 작품 극복 위한 노력으로 예술 탄생 '진짜행세' 하는 것들에 대한 자기반성 촉구

  • 승인 2012-02-08 13:19
  • 신문게재 2012-02-09 12면
  • 임석희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회원임석희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회원
[백북스와 함께 읽는 책]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조중걸 저

▲ 임석희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회원
▲ 임석희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회원
이 책의 저자 조중걸은 예술사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예술사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명을 시도해 왔다. 이 책이 'TV 책을 말하다'의 2007 좋은 책으로 선정된 점은 우리 사회의 한가닥 희망이 아닐까 싶다.

생소한 제목 '키치'로 시작하는 이 책은 분명 예술사 책이다. 구석기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인류가 만든 문화구조물의 역사에 대한 설명서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예술사책과는 확연히 다른 특색을 지닌다. 우선, 그림이나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구석기 시대, 그리스 시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우리 선조들의 사고가 어떻게 예술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제 신석기와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해왔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기의 예술 형태와 그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들이 소개되고 있다. 나와 우주, 우리 세계를 알 수 있다는 신념과 알 수 없다는 신념의 대립이 인류의 역사를 반복해 왔다는 것, 이것을 저자는 '지성의 통합과 해체'의 반복이라고 설명한다. 문장들이 낯설고, 어려운 용어들 때문에 집중하기가 힘든 것은 오롯이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나의 무지 때문이리라. 따라서, 누군가에게 그림이나 조각품에 대한 사진과 정보가 필요하다면, 이 책은 그 목적에 합당하지 않다, 다른 그림책들을 선택하시길. 그러나, 만일 '나 자신도 모르는 나'를 만나고 싶다면, 자아의 진정한 깊이를 맛보고 싶다면, 단연코 이 책을 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조중걸 저
▲ 조중걸 저
, 키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이 문제인가? 키치는 싸게 만들어진 저속한 작품이라는 뜻으로 저자는 고급예술로 위장한 비천한 예술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예술사를 하나의 모티브로 해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예술가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추구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런 키치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설명한다. 키치를 극복하고자 한 예술가들의 노력의 결과, 이는 예술로 탄생되고, 이런 창조과정은 작가들의 무단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절규에 가깝다. 예술가들은 그들이 느끼는 대로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지성이 해체된, 알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서 절정을 맛보았던 재현하는 예술을 포기했다. 바야흐로 우리가 지금 만나는 추상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현대 예술 사조의 다양성을 예술가들의 독특함, 개성, 또는 새로운 시도, 유행을 선도하고 싶어하는 욕심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재현할 수 없는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그들에게, 키치와 부단히 맞서 싸워 온 그들에게, 이것은 어쩌면 모욕스런 평가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무지는 비전문가라는 핑계로 모면해 보지만, 책을 읽는 동안 느끼는 이 화끈거림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이제 키치는 예술에만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 양식에도 널리 퍼지고 있는데, 최근 '바나나우유'라는 제품이 '바나나맛 우유'로 바뀐 것을 보면 일상 속에서의 키치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된다. 둘러보면,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가짜이고 키치다. 알고 보니 키치는 역겹다. 진짜행세를 하는 가짜이기에, 실제 가치가 아닌 허위이기에, 제가 아닌 젯밥에 가치를 더 두기에 구역질나고 끔찍하다.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이고,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 허영과 탐욕, 허위의식, 위선, 자기기만이 모두 키치일진데, 어떻게 해야 우리는 키치를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이쯤되면 예술사라는 학문으로 시작해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좋은 책은 어렵다고 했던가? 그런 점에서 난해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여러 번 곱씹어야 하고, 읽을 때마다 알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새롭다. 여러 번 읽고 나서야 표지 그림이 왜 뭉크의 절규로 선택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