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그러나 송사를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법에 의한 송사를 싫어했고 나라에서도 송사이전에 인륜과 도덕으로 다툼을 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것이다.
예전에도 오늘날과 같은 제도는 아니지만 엄연히 사법제도가 있었으며 다만 송사가 극히 드물었을 뿐이다. 그러나 송사가 드문 중에도 지혜로운 재판관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을 지혜로운 재판관으로서 자기 자식이라고 다투는 두 여자에게 실제 자식의 어머니를 가려준 예를 알면서도 우리나라에 이러한 지혜로운 재판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바로 고려말기 대사헌까지 지낸 이보림이다.
그가 경산부사로 부임한 때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보면 참으로 지혜로운 재판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동헌에 찾아와서 하는 말이 “우리 옆집에 사는 김모라는 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의 소 혀를 잘라버렸으니 처벌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으로 송사를 했다. 이에 이보림은 이웃에 사는 김모를 불러 왜 이웃집 소의 혀를 잘랐느냐고 묻자 이웃에 사는 김모라는 자는 “제가 왜 아무런 이유없이 이웃집 소의 혀를 잘라버렸겠습니까?”라며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사실 이보림으로서는 특별한 증거가 없으니 억울한 농부의 주장만으로 김모를 처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보림은 한 꾀를 내어 아전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우선 혀가 잘린 소를 반나절 이상 물을 먹이지 말고 소가 목이 마르도록 하라. 그 후 물통의 물에 간장을 타서 그 물통을 들고 동네사람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소에 물을 마시도록 하는데 다만 소가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통을 치워서 소가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문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한 사람씩, 한사람씩 원님의 지시에 따라 소에 물통을 갖다 대었다. 물론 소가 간장을 탄 물인데도 자꾸 마시려고 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김모라는 자에 이르러 그가 물통을 소에 들어대자 소는 물을 마시려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김모라는 자가 이웃집 소의 혀를 자른 범인임이 밝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이보림이 추궁하자 김모라는 자는 이웃집 소가 자신의 논에 있는 벼를 자꾸 뜯어먹기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자백한 것이다.
우리 조상의 지혜, 솔로몬의 지혜에 못지않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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