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남]불혹의 대덕, 분노하는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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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남]불혹의 대덕, 분노하는 과학자

[중도시감]권은남 기업유통팀 부장

  • 승인 2012-02-02 13:23
  • 신문게재 2012-02-03 21면
  • 권은남 기업유통팀 부장권은남 기업유통팀 부장
▲ 권은남 기업유통팀 부장
▲ 권은남 기업유통팀 부장
'목숨을 걸고 원자력 자립을 위해 연구해 왔는데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원자력 연구원 A 박사는 1985년 원자력 자립이라는 국가정책의 목표 아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청춘을 바쳐 연구했다. 그리고 15년 만에 원자력설계기술 등 우리나라를 원자력기술 자립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성과를 일궈냈다. 그 와중에 동료는 과로로 인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고, A 박사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한다. 국가 미션을 수행하다 세상을 떠난 동료에 대해 관련부처나 정부에서 조화하나 보내지 않고 위족에 위로의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국가적인 미션을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연구개발이 끝나고서는 연구성과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미션을 주었던 국가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에도 평가는 고사하고 이렇다저렇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A박사와 동료연구원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무기력에 빠진 A박사를 비롯한 과학기술계 연구원들은 분노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연구소의 정체성마저 흔드는 정부출연연구원을 단일법인화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구현장은 흔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3년 국부창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조성돼 대덕연구단지가 어느덧 40년 가까이 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이 변화하는 등 부침을 겪어왔다.

대덕연구단지 40년의 역사는 국부창출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1년에는 16개 출연연을 9개로 통폐합해 과학기술처 산하로 일원화했다.

1999년에는 과학기술부 산하의 출연연을 연구회 체제로 개편, 국무조정실 아래 3개 연구회(기초·산업·공공)로 만들었다. 3개 연구회를 만들 당시에도 '출연연-3개 이사회-국무총리실'이라는 지배구조로 현장연구원들은 '옥상옥'이라며 반발했지만, 정부의 뜻대로 추진됐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04년에는 또다시 연구회 산하 22개 출연연이 과학기술부 산하 혁신본부로 모두 이관했고 2008년엔 3개 연구회를 지금과 같은 기초 및 산업기술연구회의 2개 연구회 체제로 개편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가과학기술 정책을 주도했던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마저 폐지, 연구현장을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라는 컨트롤타워를 잃어 버린 출연연은 아비 없는 자식 꼴로 천덕꾸러기가 돼버리고 말았다.

이리저리 휘둘렸던 출연연은 또다시 융·복합 연구와 효율성 제고라는 핑계로 정부가 추진 중인 단일법인화로 또다시 몸살을 겪고 있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폐합과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치렀던 과학기술계가 자괴감에 빠질 만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속기관을 달리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지배구조만 바뀐 것이 아니다.

출연연을 민간연구소와 대학 간 경쟁을 위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도입, 연구원들을 보따리장수로 내몰기도 했다. 과제별 예산을 따 내기 위한 연구원들은 연구현장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 했다. 특히 출연 연구소를 이리저리 옮길 때마다 정부부처들은 몇몇 연구소를 자기관할에 놓으려고 파워게임을 벌여, 출연연 조직개편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 메커니즘이 작동, 출연연 모두가 국과위로 이관되지 않고 3분의 1에 가까운 연구기관들을 부처에 잔류시킬 예정이다. 연구소 간 칸막이를 없애고 융·복합연구를 통해 국부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 중 하나다.

'연구현장을 간섭하지 말고, 제발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는 연구원들의 하소연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기 10개월 도 채 남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진정 과학기술계를 위하고 출연연을 미래 먹거리창출의 기지로 생각한다면 임기 말 과학기술계를 흔들지 말고 출연연 지배구조라는 어젠다를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 연구현장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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