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그때 나는 도넛을 처음 먹어봤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가방 안에는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얗게 설탕을 두른 그것은 입에 대기가 무섭게 부서졌고 부서지기가 무섭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나에게 배당된 것은 늘 하나 아니면 둘이었다.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 사라져버리는 도넛의 여운은 그다음 주말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이어졌다. 세상에 그렇게도 맛 좋은 빵이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시골 점방에 걸려 있는 눈깔사탕에 꽈배기, 기껏해야 풀빵을 사서 호호 입을 다시던 시골아이에게 도넛의 환상적인 맛은 도시 그 자체였다.
2학년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도시로 나와 살게 된 동네에는 마침 골목시장이 있었다. 골목 양편으로 어물전과 신발전과 옷가게 등이 있고, 가게 앞으로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푸성귀를 갖고 나와 주욱 앉아서 손님들을 기다렸다. 점포도 몇 개 안 되어 난전에 가까웠지만, 저녁 무렵에는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놀이터 없는 우리들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다니는 그것이 재미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골목시장이 끝나는 지점에 간판도 없이 빵집이 문을 열었다. 반들반들한 크림빵과 우툴두툴한 곰보빵. 먹을 기회도 많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못내 설레게 한 것은 빵을 구울 때 나오는 냄새, 그 기막힌 냄새였다. 한여름철 밤이 되면 더위를 이기지 못해 동무들과 시내 구경을 나갔다. 해만 떨어지면 다니는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던 그 시절, 우리들은 가물거리는 가로등 아래서 도청 공보판의 사진 구경을 하는 것이 큰 재미였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따로 있었다. 공보판 옆에 있던 '승리당' 빵집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재미였다. 하얀 크림으로 덮인 케이크 위에는 집도 있고 나무도 있고 병정도 있었다. 눈으로 그렇게 빵맛을 보는 것으로 한여름 밤의 산책은 끝이 나고는 했다.
입으로 맛을 보고 코로 맛을 보고 눈으로 맛을 보던 그 유년의 빵은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 대학 시절의 기억으로 다시 이어진다. 아르바이트로 제법 주머니가 두둑해진 어느 해 겨울 때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 돈으로 뭘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은행동 '델리제과'로 걸음을 옮겼다. 크림빵, 곰보빵, 단팥빵, 도넛 등을 가리지 않고 한보따리를 마련해 사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성탄절 노래를 부르는 대신에 우리집 형제들은 그 해 몇날 며칠 동안을 벽장 속에 넣어둔 빵을 꺼내 먹는 재미에 골몰했다.
동네 빵집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며 다시 유년의 기억 속에서 빵을 떠올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사의 내용대로 동네 빵집이 어느 한순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델리제과'가 있던 곳에는 '파리바게뜨'가 들어섰고 '승리당'이 있던 자리에는 '뚜레쥬르'가 문을 열었다. '뚜레쥬르'는 전국에 1407개 점포가 있고 '파리바게뜨'는 현재 3010개 점포가 성업 중에 있다고 한다. 반평생의 업을 때려치우고 어느 날 '파리바게뜨'로 이름을 바꿔 단 아파트 입구의 빵집 아주머니는 축하하는 인사를 손사래 치며 사절했다. 프랜차이즈의 기회를 못 잡고 난전으로 밀려난 수제 빵집들은 오늘도 1000원에 3개를 외치며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거나 준비 중에 있어 빵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베이커리 전문점 '아티제'는 S그룹의 딸이, '달로와요'는 또 다른 S그룹의 딸이, '포숑'은 L그룹의 딸이, '오젠'은 H그룹의 딸이 각각 운영을 시작했거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들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 엊그제 일인데 다시 아흔 아홉 섬 가진 자들이 한 섬 가진 자의 망태를 넘보고 있다. 무차별 경쟁의 끝은 무한 집중이다. 신자유주의가 드리운 그늘이 내 '유년의 뜰' 한가운데까지 밀고 쳐들어올 줄은 미처 몰랐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