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석희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회원 |
최근 '우연'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내 부모를 만난 것도, 인류가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도, 지구가 우주에 존재하는 것도 모두 우연의 연속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과연 이런 우연성의 끝에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하던 차에 손에 잡힌 책이 바로 『클라우드 아틀라스』다.
서로 각기 다른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나열되어 있는 이 책은, 몇 백 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태평양을 표류하는 어떤 여행자의 일기로 시작한다. 여기엔 독자의 어떤 감흥이나 관심을 끄는 내용이나 대상은 하나도 없다. 두 번째 이야기는 첫 이야기와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19세기 영국 귀족의 편지다.
처음에는 책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에 표류하는 주인공과 귀족 청년에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항변과 더불어 책을 덮고 싶어진 순간, 한 가닥 호기심이 발동했다. 두 번째 이야기 속 귀족청년이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 말미에 어떤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첫 번째 이야기 속 주인공의 표류기인 것이다. , 2권마저도 손을 뗄 수 없게 만들고 말았다. 2권에서는 문명이 파괴된 야만적 미래의 모습까지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고, 저자는 다시 우리를 서서히 과거의 시공으로 되돌려 처음 표류기의 주인공으로까지 안내한다.
▲ 클라우드 아틀라스-데이비드 미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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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성수대교, 대모산과 같은 낯익은 지명이 반갑고, 우리의 줄기세포 개발기술의 우위성에서 살짝 우쭐해지기도 했지만, 반면 줄기세포로 만들어진 인간 아닌 인간, 클론과 공존하는 미래 시대의 암울한 모습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상상조차도 하기 싫은, 파국적 우리 문명의 미래 모습으로부터 우연의 끈을 과거로 되돌리다보면, 어디선가 보았던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는 낯익은 부정부패와 비리, 숨겨진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위선, 허위의식, 무관심이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읽는 내내 느껴지는 인류의 미래 모습에 대한 어색함과 불편함은 적나라하게 고발된 인류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통해 작가가 지금시대 우리인류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어쩌면 우연에 장악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하지만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현재의 어떤 행동이나 태도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모르는 것이다. 이 책은 파국적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오고 또 과거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잊고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현대물리학에서 말해온 '우연성'을 이제는 현대문학, 그리고 우리 삶에서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임석희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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