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가해 학생이나 피해학생 모두가 결국에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모습에 교육 당국이 허둥이고 있다. 교육 주체들은 대전 여고생의 연이은 자살 사태에 서로를 보듬는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를 막는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 학부모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숨기지 말고, 공론화하자=학교 폭력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오를수록 학교 폭력 문제는 심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참고 숨기며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무마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여전히 일선 학교 곳곳에서 은밀하게 감춰지는 학교 폭력 역시 '터지면 서로 피곤하다'는 무책임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게 교육학자들의 진단이다. 폭력은 숨기면 숨길수록 독버섯처럼 퍼지며 폭력이 폭력을 낳는 폐해를 방치한 게 작금의 학교 폭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나중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상황도 연출되기 때문이다.
김신호 대전교육감은 “이제 학교 폭력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야 할 때”라며 “공론화를 통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대 전우영(심리학과) 교수는 “지역별로 조사와 처벌 권한, 상담기능을 갖춘 공인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 당국은 강도 높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엄포했다. 경찰까지 '엄격한' 처벌 여론에 동참했다. 올 들어 13일 만에 학교 폭력 신고(685건)가 급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학교 곳곳에 회의감과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나효숙 글꽃중 교장은 “처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바른 품성과 인성교육”이라며 “특히, 친구들끼리 아끼고 보듬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성환 전교조 대전지부장은 “어린 학생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건 교육을 포기하고, 어른들의 비겁과 무책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을지대 유제춘(정신과) 교수는 “감수성이 풍부한 민감한 시기일수록, 강압적인 건 좋지 않을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자녀의 고민을 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듬고 감싸자=학교 폭력 문제는 이미 교육계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커졌다. 가정과 학교는 기본이고, 이제 전 사회적으로 아이들을 향한 시선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나태순 대전교육청 장학관은 “맞벌이와 결손 등 가정마다 사정이 달라 가정교육을 탓할 순 없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관심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환재 대전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상담하는 상당수의 청소년은 관심을 받길 원한다. 가정과 학교를 넘어 이제 지역사회가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대 전우영 교수는 “더 큰 문제는 사회다.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따돌리는 걸 용납하는 문화가 있다”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어른들의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은 잘못된 어른들의 문화를 더욱 변형해 악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남대 김형태(교육학과) 총장은 “아이들의 무한 자유를 무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가정과 청소년이 자기 욕구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며 “교사에게 통제권을 주고, 어른은 어른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상실됐던 사회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
오주영·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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