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자 한국춤무리 대표·무용가 |
창밖 눈님은 나리시고…. 커피 한잔을 하며 간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 되뇌어 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다짐했던 것 같다. 그 어느 해 보다도 지난해는 나에게 빛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작품을 뱉어 낼 수 있었고 아울러 그로 인해 보태어진 지인들로 풍성하게 보낼 수 있었으니깐. 올해는? 개인적으로 춤에 대한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라 할까? 정점에 올라와 있는 것에(스스로의 잣대, 만족감에 의한) 대한 확인 방점이라 할까? 물론 부담스럽긴 하다. 더 좋은 작업으로 관객들을 반드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것으로 에둘러본다. 몰입의 힘을 믿어 보자는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나서 나는 아마도 다른 작업으로 매진할 것 같다. 새해의 슬로건이 '미치자' 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추어왔고 그 춤의 인생이 30~40년 되니 이제야 손꼽아 내 놓을 수 있는 작품 몇 가지 생기듯이 앞으로는 춤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렇게 해 볼까 한다. 누군가의 글 중에 생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미쳐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춤? 미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꾸준히는 해 왔던 것 같다. 마치 그러해야 만 할 것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고 일과 시작하고…. 그렇게 일상생활 하듯이 당연한 것처럼 그냥 행복한 마음으로 춤을 추어 왔던 것 같다. 미치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꽤 긴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스스로 만족한 작품 하나, 둘 토해 내기까지에는. 그러나 이제는 그 춤은 기본(basic)으로 깔고 가고 앞으로 사는 동안엔 흙 작업에 미쳐 볼까 한다. 기물을 만들고 유약을 입히고 그에 맞는 소성(가마때기)을 하는…. 아무리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할지라도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길지는 않기에 미치지 않으면 춤과 같이 스스로 만족 할 수 있는 작품 하나 건져내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법이라 할까? 아니면 그동안 그 어느 것에도 미처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에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새해소망은 '미치자'였던 것 같다. 그만큼 열정을 가지자는 스스로에 대한 주문 아닌 주문인 듯싶다.
그리고 두 번째의 다짐은 사람들은 본인에게 없는 부분을 소망하고 기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새해엔 좀 더 여성으로서의 성(性)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어느 때부터 인가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거침없는 행동과 말을 뱉어내는 나를 느낄 때가 종종 있어졌기 때문이다. 나 어렸을 때 그러한 어른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마음과 한편 노인이기에 그러할 수 있는가 보다 라고 치부해 버렸던 기억들이 있지 않았는가. 지금의 내가 딱 그러한 것이다. 하여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할 것 같아서다. 내 소녀 시절의 그 잣대로 나를 가늠하고 행동하며 스스로의 여성성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아줌마, 할머니의 모습으로 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품어져 나오는 기운은 풋풋한 사과속살의 모습을 띠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거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수줍음을 탈 줄 알며 빨간 루즈와 뾰족한 구두가 어울리는 나, 비단 겉모습만이 아닌 내면의 향기가 여성만이 줄 수 있는 즐거운 기운으로 승화되어 주변을 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여인이고 싶다는 것이다.
굳이 버킷리스트(bucket list)가 아니더라도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한 두 가지 실현시켜 나가는 나였으면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옆에 그가 없어도 그의 운세까지 함께 보는 것이라는 사랑의 마음이 있는 나 이지 않는가? 이 새해 아침 브라보! 나 자신에게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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