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명렬 대전남부교회 목사 |
질병으로 신음하는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기도하여 소망을 갖게 합니다. 이것이 저의 일이고, 늘 저는 그런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절기로 부활절이 있었던 지난 4월에 색다른 경험을 하였습니다. 목사인 제가 환자가 되어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과로와 살모넬라균으로 인한 급성 장염 때문이었는데, 5일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주일에 저는 쓰러져서 강단에 서지 못하고 병원에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늘 환자들을 심방하는 사람에서,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는 환자가 되었습니다.
또 연말에는 어머님이 수술을 위해 한 달 동안을 입원하시면서, 환자의 보호자로서 병원에서 지내보기도 했습니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해봤습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 퇴원하는 날짜를 기다려보기도 했습니다.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로서 병원에 있으면서, 저는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늘 환자와 보호자를 심방하는 신의 대리자(代理者)로서가 아니라, 아픔과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 한 인간이 되어보았습니다.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았습니다. 또 주변 병상에 심방오신 목회자들을 환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으로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병원의 행정을 하는 분들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나보았습니다. 너무도 감사하고 헌신적인 분들도 만났고,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분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경험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자기 자리에서 떠나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무엇이 내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모습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 많은 일에 파묻혀서, 혹은 너무 오랜 시간에 무디어져서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 때가 있습니다. 구호로는 '믿음, 소망, 사랑', '정의사회 구현', '감동 진료 실천'과 같은 말을 하지만, 전혀 그 추구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의 서 있는 자리를 떠나 새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 전 청년의 때 신학수업을 받을 당시, 스승이신 목사님과 여름의 끝자락에서 옥수수를 딴 일이 있었습니다. 배고팠던 시절이라 옥수수를 따서 쪄 먹을 생각에 기분이 들떠있었습니다. 탐스럽게 부른 옥수수의 배와 말총과도 같이 진하게 물든 옥수수수염을 보면서, 알알이 영근 옥수수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신 목사님은 '헛것'이라면서 그 옥수수를 버리셨습니다. '아니 이 좋은 옥수수를 왜 버리시나' 생각하고 옥수수 껍질을 벗겨보니, 정말 안에는 옥수수가 하나도 영글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헛것'이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해도 우리가 세운 계획과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헛된 구호와 형식적인 것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가끔 자신의 자리에서 떠나, 내가 대하고 만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나의 일의 본질적인 부분이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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