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전 국유지 반환 문제로 존폐의 갈림길에 놓인 한밭복싱체육관에서 고교생 아마추어 복서 염연중군이 사각링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이민희 기자 photomin@ |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법 잣대만 들이대면서 복서들을 거리로 내모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고교생 아마추어 복서 염연중(19)군은 10일 한밭복싱체육관 사각링에 올라 연신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원투 스트레이트”, “훅 돌리고” 고성을 지르며 독려하는 이수남 관장의 미트에 돌주먹을 연신 꽂아넣었다.
라이트 훅과 빠른 스피드가 장점인 염군은 지난해 대전 생활체육 복싱대회 75㎏ 이하 체급에서 금메달을 딴 유망주. 올해에는 전국체전 대전 대표 선발전 출전을 노리고 있다.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르는 링이지만 요즘 염군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국유재산 반환 문제로 자신이 다니는 체육관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어서다.
염군은 “집처럼 푸근했던 체육관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이곳에서 쫓겨나면 어디에서 훈련해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이다”라고 걱정했다.
이어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답답한 마음이지만 앞으로 일이 잘 해결돼 관장님과 훈련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염군처럼 저마다 꿈을 품고 이곳에서 권투글러브를 끼는 관원은 30여 명에 달한다. 최근 시설 좋은 체육관이 많이 생겨났지만, 대전 복싱의 산실이자 역사관이라는 자부심에 이곳만을 고집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충남대와의 문제가 불거진 뒤 관원들은 큰 충격을 받아 발길을 뜸해졌고 체육관 분위기도 쑥대밭이 됐다.
한밭복싱체육관이 사라지면 갈 곳이 없어지기는 노익장 복서들도 마찬가지다.
왕년의 돌주먹들은 은퇴 이후에도 이곳을 사랑방처럼 드나들곤 했다.
체육관 한쪽을 장식하고 있는 흑백사진과 땀 냄새 나는 글러브, 수많은 주먹을 날렸던 낡은 샌드백에 서린 추억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전국체전에 3연속 출전, 동메달을 따기도 했던 이홍기(58)씨는 그동안 체육관의 지역 사회 공헌도를 고려하면 존속의 이유는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60~70년대 구두닦이, 껌팔이 등 갈 곳 없고 불우한 아이들을 모아 복싱을 가르친 곳이 바로 이곳”이라며 “당시 복싱을 배웠던 이들이 성인이 돼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김용렬(58)씨도 같은 의견을 냈다.
김씨는 “선수 시절 체육관에서 라면 끓여 먹으며 어렵게 운동하면서 링에서 상대를 눕혔던 짜릿함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하다”며 “이 체육관이 사라지면 이곳에서 길러진 1만 5000여 명의 복서들은 마음의 고향을 잃는 셈이다”라고 한탄했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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