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터져나온 '돈봉투' 파문이 정치권을 덮치고 있다.
이제는 국민적 정치 불신이 정치 혐오 현상으로 번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선거를 앞둔 기성 정당의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은 민심의 추이를 주시하며 숨을 죽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 속에 자칫 기성 거대 정당에 속한 정치인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가거나 쇄신 또는 물갈이 대상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이 진정한 쇄신을 위해서는 간판 바꿔달기나 당의 얼굴을 바꾸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정당 구조와 운영 자체를 혁신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상 상황에서 다시 한번 초비상 사태를 맞은 한나라당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의 당사자가 박희태 국회의장 측으로 지목되면서, 비상대책위 차원에서 사실상 박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경 대응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서 조차 조심스럽게 이러한 '돈봉투'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돼 온 것이란 반응도 흘러나온다.
지역의 한 인사는 “직접 받거나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노골적으로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왔다”며 “예전 같으면이야 너나없이 정치권에서 비일비재했던 일이기에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치권의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관련해서는 지난 6일 대전을 방문한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가 자신도 “과거 목격하거나 경험한 것이 있다”고 밝혀 파장을 낳기도 했다.
당시 유 대표의 발언은 특정 정당을 적시하거나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린우리당 출신인 유 대표의 발언이 있은 직후 얼마지나지 않아 공교롭게 지도부 경선을 진행 중인 민주통합당에서도 전당대회와 관련한 '돈봉투 의혹'이 터져 나왔다.
민주통합당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선출권을 부여하는 새로운 방식의 지도부 선거를 치르고 있지만, 앞서 당 중앙위원들만을 대상으로 했던 예비경선 과정에서 일부 지역에 돈봉투가 돌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결국 이러한 문제가 지금껏 사실이 적시되지 않았을 뿐 정치권에서는 하나의 관행처럼 여겨져 온 것으로, 거대 정당들의 구조적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유시민 대표는 “오래된 정당들이 진성당원 없이 대의원을 지명하고 중앙으로 데려와 표를 찍게 하려다보니 돈을 주고 했던 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의 일”이라며 “잘못된 정당 구조와 운영에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돈봉투' 회오리가 정치권을 덮치며 선거를 앞둔 예비후보들도 전전긍긍이다. 한 예비후보자는 “중앙 정치권이 터트린 폭탄으로 정치 불신이 심화되고 유탄을 맞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잘못하다가는 기성 정당 소속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모두가 기회도 가져보지 못하고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될 판”이라고 말했다.
한 시민은 “정치 무관심을 탓하지만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하나 같이 이 모양이니 과연 국민들이 정치를 신뢰할 수 있겠냐”며 “정당 구조가 뿌리째 바뀌지 않고서는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이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려 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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