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조 금강대 총장 |
요즘 세태를 보면 늘 본말(本末)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또 핵심을 벗어난 무의미한 논쟁이 많다. 심지어는 학술적인 쟁점도 말꼬투리잡기에 급급한 인상이다. 토론은 기술이다. 논의의 정곡을 찔러야 하고 나와 남이 주장하는 상이점을 알아야 한다. 또 원만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어느정도 자기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토론형식의 반대말이 흑백논쟁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양단간 결판에는 조화와 화해가 깃들 여유가 없게 마련이다. 이른바 나뭇잎에 매달려서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특히 한국인은 논리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다툼의 끝은 감성적 갈등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와같은 배경에는 학교교육의 부재(在)가 큰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은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취업공부에만 열심이다. 제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쓸 겨를이 없다. 달달 외워서 눈앞의 시험을 통과하기에 급급하다. 시험 또한 이해위주가 아니라 암기식이다. 심지어 논술 또한 외워서 쓴다. 가정교육이 부실한 것도 문제다. 책한권 읽지 않으면서 자식들에게만 공부를 강요한다. 그나마 국·영·수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관계 또한 수직적 권위의식만 있고, 수평적 평등의식은 실종되어 버렸다.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기성세대의 위선이 답답하고 미울 따름이다.
지식인은 무엇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제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가난에 찌든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은 자식호강 시키는 일 만이 부모의 책무라고 착각하고 있다. 과잉보호, 무절제한 모성, 투쟁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중심주의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가족이 소중하듯이 남도 그러리라는 평범한 인식을 갖지 않는다. 오직 나와 나의 가족사랑만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버릇없고, 참을성 없으며 나약한 '애 어른'들을 사회로 방출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 길들여진 신세대는 거의 모든 가치판단을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홍수처럼 떠다니는 정보의 물결 속에 자신의 판단을 맡겨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로움은 결국 그 창의성과 상상력에 달려 있는 법이다. 지는 해를 서러워할 줄 알아야 하고 부서지는 낙엽을 보며 삶의 의미를 반조(返照)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삶의 목표가 덧없는 육체를 살찌우기 위함이 아니라 나보다 더 불행한 이웃을 돕고 사는 일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선진국이란 국민총생산량이 높고, 평균수명이 긴 나라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나보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회, 즉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곳이 선진국이다. 경제적 지표만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배려의 가치관은 여전히 과거 속에 정지되어 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었던 때는 오직 잘 살려는 목표만이 전부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빵없으면 못 살지만, 빵만 가지고도 못산다.
이제 우리는 그늘진 곳으로 눈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하고, 가치로운 일에 내 삶의 승부를 걸 줄도 알아야 한다. 새해에는 이 배려의 문화가 보다 많은 이들의 공감 속에 실현되기를 기대 한다. 어차피 인생은 지게 마련이고, 갈 때 무엇이든 가지고 가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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