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금산문화원장 |
“답답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할머니가 저를 찾아와 '나는 평생 고생해서 돈을 모았는데, 못 배운 것이 한이라 장학금을 주고 싶소, 한 가지 부탁은 대학생들의 생활이 궁금하니 한 학기에 한 번만 나를 만나 두어 시간 대학생활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소' 하시는 겁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수혜자 자격이 있는 학생들을 물색해서 할머니의 말씀을 전했더니 이구동성으로 학생들이 거절하는 겁니다. '그냥 장학금을 주면 고맙게 받겠지만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를 만나 얘기를 하라는 겁니까? 조건 없는 장학금을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저는 그 할머니의 성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자로서 자괴감이 듭니다.”
나도 금산에 정착하면서 로타리활동을 시작했고, 봉사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장학금을 만들고 전달하는 것이 봉사활동의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비단 장학금뿐만 아니라 모든 봉사활동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리고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배분되는 것이 봉사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금산에는 세 개의 장학재단이 있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가장 오래 된 장학재단은 '현숙장학회'다. 몇 억원을 선뜻 기부한 어느 할머니 덕에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장학재단은 금산군이 지역의 인재를 키우자고 시작한 '금산장학회'다. 금산군에서 50억 원, 그리고 민간에서 50억 원을 조성해서 10년 내 100억 원의 기금을 가진 장학회를 만들자고 열심히 모금 중이다.
그리고 지난 21일에 '대둔장학회'의 설립 발기인 총회가 있었다. 충남도의원을 역임한 사업가 유태식씨가 지역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몇 년 내에 10억 원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우선 3억1000만 원의 기금을 마련했고, 당장 900여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한 다음에 출범식을 가졌다.
항간에는 지역에 장학재단이 여러 개 있으면 혼란이 있을 수 있으니 하나로 합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의견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재적소에 배분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큰 장학회가 있다면 작은 장학회도 있어야 하고 서울대 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이 있다면 환경이 어려운 학생에게 지급하는 장학금 제도도 있어야 한다.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것이 경제적인 지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주고 받는 사람의 명예도 된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내가 학창 시절에 어떤 장학금을 받았다'는 것이 하나의 소중한 이력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훌륭한 분이 받았던 장학금을 지금 내가 받고 있다는 자부심도 자신의 성취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장학재단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이런 훌륭한 사람을 키웠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에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제도의 장학재단은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뜻을 위해 거금을 쾌척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예우를 해주어야 제2, 제3의 독지가들이 계속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양한 장학제도는 필요하다.
세상이 힘들수록 이웃과 함께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니,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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