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배 목원대 총장목요세평 |
어느 날 현자가 절벽근처를 지나가다가 장님이 절벽 끝에 매달려 살려 달라 소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 잡고 있는 그 나뭇가지를 놓으면 살 수 있습니다.' 현자가 아무리 외쳐도 장님은 나뭇가지를 꽉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얼마 후 힘이 빠진 장님은 나뭇가지를 놓치고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엉덩방아를 찧은 장님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가버렸다. 앞이 안 보이던 장님은 사람 키 높이도 안 되는 위치에 매달린 나뭇가지를 마치 생명줄처럼 붙잡고 발버둥 쳤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가기 위해 내려놓고 마무리하고 끝맺어야 하는 일들을 일상에서 늘 부닥친다. 연말이 되면 이런 일들이 무수히 쌓여서 산을 이룬다. 시작할 때 각오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시간이 모자람을, 여유가 없음을 탓한다. 해마다 반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 마무리해야 할 일은 직업과 관련된 업무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포함 된다. 평생을 살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여러 일로 만나게 되고 인간관계를 유지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던 인간관계는 서로에 의해 상처받고 고민하고 결국 건강도 해치게 한다.
20대와 30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59.6%가 대인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심해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고 답을 했고, 91%의 젊은이들이 마찰을 피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디 비단 젊은이들뿐이겠는가. 일을 하다가 인간관계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새해에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게 대해주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지만 다음 해 연말이 되면 정리를 못한 자신을 탓하며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한다.
헨리 클라우드라는 임상심리학자는 '끝맺음이 서툰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끝없이 갈등이 이어지는 삶 속에서 어디에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할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화려하고 큰 장미를 피우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듯 이 우리는 두 가지의 기준에서 삶의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데, 첫 번째 기준은 자신의 목표를 정확히 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의 어떤 일을 마무리할지 파악해야 한다. 목표가 명확하면, 주변 사람, 기회, 할 일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준은 타이밍이 안 맞는데도 자신이 원하기 때문에 헛되게 붙잡고 있는 가능성 없는 일들을, 실현 가능한 희망사항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희망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무엇을 끝맺어야 할지 대상이 명확해졌다면 그 다음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인생의 가지치기를 할 때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저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스스로 상처라고 생각할 지 멋진 마무리라고 생각할지 정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다음 순서는 머리속에서 변화된 상태를 수용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해서 마무리를 할 것이며, 입지 않아서 갖다 버릴 아주 오래된 옷들은 어디에다 어떻게 정리하고, 쓰지 않아 쌓아두던 가구들은 어떻게 처리하며 공부하겠다고 한 쪽에 몰아두었던 책들은 언제 다시 열어볼 것인지 세세하게 항목을 정해본다.
이 참에 거듭 실패하는 금연과 다이어트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도 짚어본다. 이제 정리할 항목들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면 아쉬움 없이 깨끗하게 정리의 길로 보내면 된다. 그 동안 자신이 붙잡고 있었던 것들에 미련을 두지 말고 정리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다는 기쁨과 소망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표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처럼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어디에서 마침표를 찍어주어야 하는지도 곰곰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의 시작은 중요하게 여기지만 마무리는 대충 매듭지었던 자신의 습성도 이제는 깔끔하게 정리해본다. 학생들은 학습에 방해되는 습성들을 마무리 짓고, 직장인들은 업무에 지장을 주었던 버리고 싶은 행동과 태도를,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얼음 같던 대화방법을 이제 잘 끝맺으면 좋겠다.
나에게 늘 붙어있던 많은 것들이 나름 아쉽긴 하지만 이렇게 가는 해와 더불어 잘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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