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게다가 영 마뜩찮다. 정치라는 게 뭔가. 서민들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주는 것 아닌가. 서민들은 살기 어렵다 아우성이고 경제는 먹구름이 잔뜩 꼈다고 걱정인데, 정치는 오직 정권 재창출, 총선 승리를 향해 '마이 웨이'다. 쇄신은 통합은 왜 한 건데? 대통령 주변의 측근비리는 가뜩이나 마뜩찮은 정치에 혐오감을 키운다. 김정일 사망으로 필연코 닥칠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한치 앞도 가늠키 어려운데 정부의 대처는 영 미덥지 않다. 답답하고 우울하다.
그런 와중에 정일근 시인의 글을 보게 된 건 작은 행복이었다. 한국일보에 쓴 글인데, 제목이 '통통, 통통통'으로 통통 튄다. 정감 어린 글투가 꽉 막힌 속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읽고 나니 제목의 리듬감처럼 삶에 율동이 생기는 듯하다.
용서해주시리라 믿고 간략히 옮긴다. 망년회 자리에서 시인의 선배 한 분이 건배를 제의하며 '통통'하면 '통통통'하고 외쳐달라고 했단다. 첫 번째 통은 새해엔 행운이 넘치도록 '운수대통', 두 번째 통은 막히는 일 없이 '만사형통'하자는 거란다. 세 번째 통은 닫힌 마음을 열고 '의사소통' 하자, 네 번째 통은 웃으며 살자는 '요절복통'이란다. 마지막 통은 새해엔 자주 안부 전하며 살자는 '전화 한 통'이다. 마지막 반전의 귀여움을 포함해 새해맞이 시점에 참 멋진 건배사다 싶다. 이 5통이 있다면 사람 사는 맛이 듬뿍 날 것만 같다.
작은 행복으로 치자면 한 가지 더 있다. 지방분권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중앙집권체제로 회귀하면서 위세에 눌려 움츠린 듯했던 이 논의가 구체성을 띠면서 힘을 받는 양상이다. 지방자치는 지역 주민이 잘 사는 환경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주민의 생각을 반영하기 위해선 결정권이 멀리 중앙정부에 있는 것보다 가까운 지방정부에 두는 게 낫다는 게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이유다. 지방자치의 제자리를 찾자는 움직임은 정말이지 반갑다.
예전과 비교하면 양상도 다르다. 전국의 분권운동 시민단체, 지방행정, 지역언론 대표와 전문가가 모여 힘을 합쳤다. 균형발전지방분권 전국연대를 구성해 조직도 갖췄다. 추진 방향도 전문가 집단답게 날씬하다. 지방분권을 구현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다 지나가긴 했지만 올해는 민선단체장을 뽑은 지 16년, 지방의회 부활 2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지방분권의 현주소는 답답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지방분권의 핵심요소인 권력이양과 자원배분 모두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돈과 인사 등 지방의 운명을 여전히 중앙정부가 쥐고 있다. 지방세의 비율 20%에 빗대 '2할 자치'요, 단체장의 능력이 중앙 정부에 가서 돈 타오는 것으로 평가받는 '앵벌이 자치'다. 권한 없고, 세원 없고, 인재도 없는 지방을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식민지'라고 표현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무엇보다 큰 이유는 기득권을 좀처럼 놓지 않으려는 중앙 공무원들 때문이다. 중앙은 아직도 '중앙=효율, 지방=비(非) 효율, 무(無) 경쟁력'이란 인식이 팽배해있다. 이러니 지방분권 요구도 갈라먹자는 요구쯤으로 여긴다.
헌법도 거들었다. 우리나라 헌법엔 지방자치는 있지만 지방분권은 없다. 자치단체의 입법권을 법령에 종속시키고 세율도 오로지 법률로 정하도록 돼있다. 지방정부를 중앙정부의 하급기관으로 예속시키고 중앙정부의 승인과 지원 없이 지방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중앙의 견제와 방해 같은 장애물을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빠른 길이기도 하다.
지방분권은 2002년 이후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제기됐다. 그러나 그때뿐 이루어진 게 없다.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내년은 아주 좋은 기회다. 이번엔 반드시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그 열매를 기대하는 희망으로 흑룡의 해, 임진년을 맞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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