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티너 저 |
이 책은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내용은 열반과 초월적 타자 하느님, 열반과 인격적 타자 하느님, 열반과 신비로운 타자 하느님, 열반과 천국, 그리스도 예수와 붓다 코타마, 기도와 명상, 평화 만들기와 평화롭기다.
각 장은 불교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폭넓은 설명과 불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교리를 연결하고 해석해 종교의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
자신보다 더 큰 어떤 존재나 활동과 연관되고, 그 일부가 되고, 그것과 합일하고 하나됨을 느끼는 것이 불교의 '공' 체험이다. 이와 같은 신비주의체험은 기독교에서도 '그리스도와 하나됨',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 등과 같이 다양하게 묘사된다.
붓다와 예수는 우리가 말하는 '영성'인 신비체험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원 종교인 힌두교와 유대교를 비판할 수 있었고, 오늘날의 불교와 기독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우리 종교계에 만연하는 기복과정에서의 신비체험이 아니라 수행과정에서의 신비체험을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불교의 간화선이 추구하는 바는 해탈 즉 깨달음이며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 불교에서 간과하는 측면이 있는 자비를 지혜와 함께 깨달음의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하며 자비를 열반 혹은 상호존재를 깨닫는 체험의 일부로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도 상호존재의 관계에서 설명한다.
즉, 하느님을 전지전능한 인격적 존재로 볼 것이 아니라 세상과 창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상호존재의 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항해하는 배의 돛에 부는 바람처럼 영은 지배하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한다.
종교 경전은 말과 글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불립문자를 얘기하고 있다.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체험이 가장 중요하며 말은 부차적인 것이기 때문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고까지 말한다.
붓다의 말일지라도 스스로 열반을 체험하는 것에 반대된다면 무시해야 하며 건너편에 도달하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달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엄격히 구분된다.
▲ 이병록씨 |
모든 역사를 현재의 순간(영원한 지금)으로 흡수하는 불교의 방식과 역사를 최종적 결말(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로 나아가게 하는 그리스도의 방식도 대조적이다.
저자는 '그때에는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예수의 확신에 집중하느라 '지금'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예수의 확신을 놓치고 있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종교서적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어떤 종교에도 편향되지 않은 자세로 이 책을 읽으면 현대의 종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을 관조하며 바라볼 수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종교에서도 초심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영혼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이병록 백북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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