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에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일 년 내내 아껴 쓰던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무신이었다. 고무신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20년대 처음 만들어 신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짚신, 나막신, 가죽신과 함께 사용하다가 점차 고무신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제는 운동화를 많이 신고 있다. 고무신은 잘 떨어지지 않고 질기며 물에도 젖지 않아 쉽게 닦을 수 있고, 물이 묻어도 쉽게 마르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특히 검정고무신은 잘 닳지 않고 질겨서 오래 신을 수 있었기 때문에 통고무신이라고도 하였다. 통나무, 통뼈 등과 같은 뜻으로 고무를 통째로 조각하여 만들어서 질긴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통고무신을 처음 산 날은 너무 좋아서 함부로 신지 않고 아끼면서 맨발로 다니기도 하였다. 지금의 운동화는 부드러워서 그럴 일이 없지만 이 통고무신은 단단했기 때문에 길들이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새신을 신고 다니다보면 발뒤꿈치가 벗겨져서 맨살이 드러나 쓰리고 아팠던 기억이 추억처럼 남아 있다.
별다른 장난감이 없던 시절 통고무신만한 장난감도 없었다. 냇가에서 고무신에 물을 담아 놓고 송사리 등 작은 물고기들을 담기도 하였고, 두 짝을 서로 포개면 포개는 과정에서 한 짝은 자연스럽게 돛대처럼 솟아올라서 물에 띄우면 멋진 배가 되었다. 모래밭에서는 모래를 나르는 멋진 자동차가 되기도 하였다. 통고무신이 아무리 질기고 잘 닳지 않는다고 하여도 오래 신다보면 찢어지거나 닳아서 떨어지게 된다. 지금은 운동화도 흔해서 조금만 닳거나 유행이 지나면 버리곤 하지만, 신발이 귀했던 시절에는 떨어진 통고무신에 다른 고무를 붙이고 불로 지져서 때워 신곤 하였다. 장날이 되면 마을 장터에 고무신을 때워주는 전문 장인이 있었고, 때로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돌면서 고무신을 때워 주곤 하였다. 떨어지거나 찢어진 고무신을 때울 때 빙 둘러서서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고무 탄 내음에 매운 코를 찡그리던 기억이 새롭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