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장우 한남대 무역학과 교수 |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 개방하자는 논리는 버스가 지나고 나서 손을 흔드는 것과 같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것은 일류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 것 뿐이다. 일류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저절로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수한 인재와 경쟁을 통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우리나라로서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개방 없이 번영을 이룰 수는 없지만 개방이 반드시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개방을 한 국가는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성공한 국가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봐야 한다. 따라서 한·미 FTA에 따른 개방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지금부터 한국인의 저력과 잠재력을 믿고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경쟁력을 키워 나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FTA는 한국경제와 산업에 긍정적·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긍정적으로는 관세·비관세 무역장벽의 폐지 내지 완화로 통상마찰이 줄어들어 미국에 대한 수출이 늘어날 것이다. 한·미 FTA를 통해 관세가 낮아지면 미국 내 한국제품의 소비자가격이 20~30% 저렴해져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미국산 제품이 싼 가격으로 수입되어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격이 인하되어 소비자 후생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농업, 금융, 의료, 서비스 등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에서는 상당한 피해와 진통이 예상되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요구된다.
한·미 FTA호는 앞으로도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비준을 이루긴 했으나 비준 과정에서 야기된 사회적 갈등과 국론 분열을 봉합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발효된 상황에서 사회적·정치적 혼란으로 더 이상 소모적인 국력 낭비가 없도록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오늘날의 국가 간 교역은 철저하게 주고받는 상호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GDP대비 무역의존도가 70%에 이르고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시장 개방을 통해 이익을 보고 있어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문을 열라고만 요구할 수는 없다. 즉 영화와 드라마를 수출해 K-팝과 같은 한류를 만들어 내면서 다른 나라 문화는 수입하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다.
앞으로 정부와 기업은 한·미 FTA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장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농업 등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도 정부가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농업이 개방의 충격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농업, 농촌, 농민이 스스로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는 노력이 있어야 시장개방에 따른 피해를 극복할 수 있다.
예컨대, 일본은 1999년 WTO에 의거하여 쌀시장을 개방했지만 고품질 벼 품종 개발, 정부와 지자체의 판매지원, 첨단농산물 가공기술 확산 등으로 개방 피해를 최소화하고 오히려 고품질 쌀 수출국가로 부상했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취약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되 단순한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국내의 비판적인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들의 이해와 양보를 적극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관세철폐에 따른 가격인하와 물량위주의 수출에 안주하지 말고 제품고급화, 브랜드화, 트렌드제품 발굴 등 새로운 시장개척전략을 수립하고 부단한 기술개발과 내부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힘을 기울여야만 FTA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