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수 ETRI 기술경제연구부 책임연구원 |
한편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맞이하여 향후에도 이러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즉 과학자 또는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심지어 정치인까지도 우리나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은 R&D(연구개발)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현재 보다 더욱 견고한 성장을 위해서는 비물리적 자원인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때만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학이란 자연세계에서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 지식이며, 이러한 지식체계를 활용하여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도구로서의 제품을 만드는 역량이 기술로 정의 될 수 있다. 요컨대 사물의 구조, 성질, 법칙 등에 대한 탐구활동을 통해 인간사회에 요구되는 것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과학기술이다. 이러한 이유에는 우리사회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하에 우리사회는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점진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연구개발이 추진되고 있고, 다양한 인프라가 조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과거에 비해 존경받거나, 스스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우수한 과학기술성과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면 왜 과학기술자들이 행복감을 덜 느끼고, 괄목할만한 성과도 보이지 않은 것일까? 이에 대한 다양한 주의주장이 존재하지만 필자는 '시장지향적 R&D 패러독스'에서 그 원인을 지적하고 싶다.
경영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공급중심의 사고에서 수요중심의 사고로 전환됨에 따라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왔다. 과거 생산관리 중심에서 조직관리, 재무관리 시대를 지나 마케팅이 시대를 풍미하는 핵심가치로 대두되었다. 예컨대 마케팅연구의 세계적 명문인 노스웨스턴의 켈로그 스쿨의 마케팅바이블이라는 책을 통해 고객가치를 경영의 핵심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R&D전략에도 영향을 주었다. 즉 최근의 R&D의 키워드 중 가장 강조하는 용어가 시장지향적 R&D다. 즉 시장의 니즈를 잘 파악하여, 이에 부합하는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적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필자 역시 시장지향적 R&D를 너머 시장결정형(Needs Determined) R&D로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지향적 R&D에 대한 적용상의 오류, 즉 시장지향형 R&D 패러독스로 인한 과학기술자들의 순수한, 창의적 사고를 제한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즉 최근의 R&D기획과정에서 요구되는 내용을 보면, 개발하고자 하는 것의 기술적 신규성, 과학적 타당성 보다는 시장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시장성이 있는 R&D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지 않다. 다만 과학기술자들에게 구체적인 사업모델의 제시를 원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과학기술자에게는 새롭고, 효율적이며, 가치있는 지식과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도록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더 나아가 R&D기획 전문가(필자와 같은 기술전략연구자)에게도 숭늉을 소비할 고객이 존재하는지 그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한 정보만이 요구되어야 한다. 제품을 어떻게 팔 것인지, 수익가능성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은 기업의 역할인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제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회의 행복을 견인하는 과학기술자들의 고귀한 활동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시장지향적 R&D 패러독스' 즉 우물에서 숭늉 찾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미래의 희망인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아닐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