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등재기준은 신빙성과 유일성, 영향력, 세계적 가치 등이 있는데 우선 유물이 진품이며 그 실체와 근원지가 정확한 자료여야 한다. 또 유일하며 대체불가능 해야 하고 이 유물의 소실 또는 훼손이 인류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해야하며 일정기간 동안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자료다.
세계적 가치에서는 변화의 시기를 반영하는 시간성(Time), 역사발전에 기여한 장소나 지역관련 정보(Place), 역사에 기여한 개인의 업적(People), 세계사의 주요주제(Subject/Theme), 형태나 스타일에 있어 표본(Form and Style) 등 5가지 가운데 하나이상의 기준에 적합해야한다. 추가기준으로는 완성도 또는 완전성에 있어 탁월한 자료, 독특하거나 희귀한 자료여야 한다.
족보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위의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충족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성봉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우리나라 계보자료는 2가지 측면에서 기록유산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 뿌리공원 전경 |
하나는 우리나라의 계보자료가 세계역사와 문화의 중요한 주제를 현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문화를 초월하는 사회문화적, 또는 정신적으로 두드러진 가치가 있는 자료라는 점이다.
족보는 가계의 계통과 혈통을 대체로 시조로부터 족보가 간행되는 시점까지의 모든 자손을 수록하며 개개인의 성명, 생졸년, 과환(科宦), 출계와 입양, 배우자 및 그의 사조(四祖:부, 조, 증조, 외조) 등 전기사항을 기록하였다. 또 서발(序跋), 기(記) 또는 지(誌), 항렬표(行列表), 분파도(分派圖) 등을 수록해 친족이나 문중, 종중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 등을 알 수 있게 한다.
▲ 문화류씨 세보 |
이런 계보자료를 통해 조선사회의 정치 및 문화적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족보가 기록유산으로 가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우선 가문의 가계기록인 족보와 세계사적 가치를 어떻게 엮어낼지가 문제다. 중국에서 보학이 전해져 왔고 족보를 세계사적으로 내세우기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지극히 가족사 중심이라는 것이다.
문화재청 국제교류과 박희웅 사무관은 “세계기록유산은 국내적 가치 혹은 지역적 가치를 보는 게 아니라 이 유산이 세계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는 것인데 족보는 가족사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세계 역사와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18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이 된 일성록과 비교해 설명한 박 사무관은 “일성록은 정조의 개인일기에서 출발하지만 조선후기 공식적인 국정일기로 전환되었고 통치철학과 대외관계 등 동아시아 정치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일성록은 전근대시대의 전제군주 국가에서 국왕이 자신의 정치 운영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향후의 국정운영에 참고할 자료로 삼기 위해 작성한 일기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 성격의 기록물”이라고 했다.
5·18기록물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의 다양한 기록물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가치가 인정됐다는 게 박 사무관의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족보가 전 세계적으로 어떤 영향력이 있는지를 재조명해야하며 세계사적 가치를 세워야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문중에서 가지고 있는 족보 가운데 어떤 것을 대표로 내세울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 안동권씨성화보 |
여기다 특정 집단의 계보를 모은 문보(文譜), 무보(武譜), 음보(蔭譜), 진신보(搢紳譜), 역과보(譯科譜), 남보(南譜), 북보(北譜), 향보(鄕譜) 등 가문의 특성과 기록방법, 용도에 따라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족보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대표족보를 뽑고 관련자료를 수집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에 대해 박 사무관은 “족보의 경우 컬렉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족보의 내용과 형식적 특성에 따라 테마중심으로 모아 이 가운데 대표 족보들을 선별해 보여주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족보의 세계사적 가치를 정립하고 대표족보를 고르는 것에 앞서 대전이 족보의 메카로 자리 잡으려면 왜 대전이 족보도시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한다. 여기에는 단순히 대전에서 전국 족보의 90%이상을 발간했었다는 과거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족보전문박물관과 뿌리공원, 성씨조형물 등이 대전에 있다고 해서 족보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대전이 주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전시는 서둘러 족보전담조직을 꾸려야하며 족보박물관의 역량을 키워야한다.
대전시는 대전지역 유일의 문화관광유망축제인 효문화뿌리축제만 중구에서 이관해와 치를 게 아니라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을 맡아 가꾸는데도 적극 나서야한다. 뿌리공원 내에 있는 족보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전문박물관이지만 연간 운영비가 고작 3억 원으로 변변한 홈페이지도 없고 학예연구사 1명이 전시기획과 유물보존관리, 교육, 책자발간, 행정 등을 겸하고 있다.
올해 유물구입예산 또한 1000만원에 불과해 2000만~3000만원을 호가하는 1600년대 족보 구입과 계보관련 연구는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계명대 동산도서관이 당파를 알 수 있는 독특한 표기법을 보여주는 1606년 진양하씨족보와 퇴계선생을 배출한 진성이씨족보 등 1만4000여점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고 우리지역인 배재대 족보자료실도 4040권의 족보자료를 보유하고 있는데 비하면 족보박물관 족보는 4607점으로 한국 최초의 족보전문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그나마 이 가운데 문화재는 한 점도 없는데다 대부분의 전시물이 복제본이거나 최근 자료들이어서 족보도시 대전의 위상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연간 3억 원의 운영비로는 인건비와 관리비도 턱없이 부족해 유물급 족보 구입은 꿈도 못 꾼 채 기증에 의지해 전시물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족보의 세계적 가치를 알리고 대전이 족보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대전시는 족보박물관을 시로 이관해 전문인력을 늘리고 재정적 지원도 강화해야한다. 그래야 족보박물관을 중심으로 문중 족보와 자료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이 가능해진다. 여기다 족보연구소 등 전담기구를 만들어 문중은 물론 연구기관, 전문가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해 족보관련 국제학술세미나 등 연구를 체계화·전문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5ㆍ18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이 된 성일록 |
한편 5·18기록물 등재추진위원회 추진단장이었던 안종철 박사(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조정관)는 “5·18기록물은 기록유산 등재를 앞둔 시점에 일부 보수단체가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까지 찾아와 광주시민학살은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라는 청원서를 제출할만큼 등재순간까지 마음을 놓기 어려웠는데 대전의 경우 족보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하며 “족보가 기록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대전시와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나머지는 전담기구를 꾸려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연구를 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끝>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글=임연희·동영상 금상진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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