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수]친구에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한일수]친구에게

[기고]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원장

  • 승인 2011-12-15 14:11
  • 신문게재 2011-12-16 20면
  • 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
▲ 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원장
▲ 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원장
춥네. 12월도 벌써 중반을 넘어가니 추울 만도 하지. 우리가 어렸을 때라면 지금쯤은 김장을 다 해서 차곡차곡 독에 담아 묻고 창고에 연탄을 쌓을 때겠네. 김칫독 몇 개, 연탄 이백 장을 채우시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은 허리가 휘셨겠지만, 콧물을 닦아 반들반들해진 소매 끝을 걷어가며 우리는 추운 골목길에서 오징어나 비석치기, 말뚝박기에 여념이 없었지.

아이들은 눈구덩이 속에서도 깔깔거리며 놀고, 어른들은 한 여름에도 무릎에서 찬바람이 나온다고 하시지 않은가? 그게 다 양기가 있고 없고 차이일세. 요즘은 양기란 말이 남정네 정력으로만 쓰이는 듯해서 다소 민망한 말이 됐네만, 한의학에서는 음기와 더불어 생명력의 다른 표현일세. 양기가 점점 쇠해지면 정력도 당연히 달리게 되긴 하네만, 실은 목숨이 사위는 것이지. 자연법칙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가는 세월 막자고 가시로 치고 지팡이로 막았더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질러오더란 옛사람의 탄식이 요즘 내 마음일세.

지난 토요일 대전역 광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네. 우리가 함께 보았던 노란 나트륨등과 비둘기호에서 내리는 이웃들의 가난한 어깨는 눈에 띄지 않았네. 대신 KTX를 타고 오는 바쁜 현대인들의 서두르는 발걸음만 분주하더군. 거기서 무엇을 했느냐고? 한·미FTA 비준무효 반대집회에 나갔다네. 100여 명 남짓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고, 두 시간을 넘기지 않은 집회 내내 겨울바람이 매섭더만.

우스갯소리네만 1992년에 한의원을 개업한다고 선배들께 인사를 다닐 때 들은 이야길세. 왜 이제야 개업을 하느냐고, 좀 일찍 하지, 요새는 영 경기가 좋질 않다고. 그런데 말야, 내 기억으로는 그 이후로 경기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으이. 좋기는커녕 점점 살기가 팍팍해서 어려운 이웃은 더 많이 늘어나고 있지 않나. 어렵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는 청춘 둘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일세. 그런 비정규직이 십 수 년 사이에 800만을 넘었네. 내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남과 경쟁에서 양보하라고 말하기가 몹시도 어려운 세상일세. 주변 어디를 돌아봐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으니 말일세.

한·미FTA 때문에 이익을 볼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 하지만 말일세,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한·미FTA는 지금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네. 한 가지 예만 들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적으로 봐도 꽤 괜찮은 제도야. 이 정도 보험료로 이 정도 보장을 해주는 나라가 많질 않다네.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되고 미국 자본이 돈을 대는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바로 이 건강보험의 근간이 뒤흔들리게 될 걸세. 영리병원은 민간의료보험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지금 국가가 예외 없이 건강보험을 적용하라고 병원에게 강제하고 있는 당연지정제가 흔들리게 된다네. 영리병원에선 건강보험에서 주는 수가를 받아서는 흑자를 내기가 어렵거든. 좋은 시설과 이름 높은 의사들을 운동선수 뽑듯 스카우트 해가고, 대신 높은 비용을 부담시키겠지. 이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갈테고.

이런 영리병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건강보험은 흔들리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네. 한의사인 나야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병원에 주는 돈이 많을수록 좋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모자라는 건강보험료에서 병원에 나가는 돈이 많으면 어찌 되겠는가. 이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돈 많은 사람들이야 민간의료보험으로 비싸고 좋은 영리병원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지. 지금처럼 3시간 기다려서 3분 진료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건강보험이 없어져서 제때 치료조차 받기가 어려워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춥네. 마음만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길 바라며, 겨울바람 부는 대전역에서 친구가 몹시 보고 싶었네. 언제고 눈 오는 날, 머리에 소복이 눈을 쌓고 사부작사부작 대포 한 잔 하러 가세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