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원 연구원 |
16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한 화가 조르조 바사리는『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에서 '자연이 위대한 사람을 창조할 때는 항상,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라이벌들을 동시에 창조한다'고 썼다. 바사리가예로 들었던 인물들은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기베르티, 파올로우첼로, 마사초였다. 이 책은 바사리가 언급한 화가들이 활동했던 15세기 피렌체를 배경으로 '스스로를 예술가로 자부하며 창조의 즐거움으로 살아간 천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1권/앤드 스튜디오.조승연 저 |
이 책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실제로 활동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이론가, 정치가들이다. 선 원근법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브루넬레스키, 중세와 르네상스의 예술 경향에 선을 긋고 사물을 공간적으로 보는 눈을 갖게 해 준 위대한 화가 마사초, 신세대 지식인 알베르티, 피렌체에서 가장 유력했던 예술 후원자 코시모메디치 외에도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사건의 현장 묘사는 마키아벨리가 쓴 『피렌체 사록』 등의 역사적 사료의 고증을 거쳤으며 등장인물의 대사도 바사리가 1550년에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등의 출처를 따른다. 시대와 정치적 상황, 인물의 캐릭터를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미술사의 흐름과 개별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 저자의 시도는 성공적이다.
이 시기 피렌체에서는 고대 로마를 복원하려는 르네상스 예술 작업이 집중된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를 다녀온 후 '꽃의 도시' 피렌체의 상징물이 된 두오모 돔을 설계하고 건축했다.
마사초는 반 메디치 파 브랑카치 재벌 가문의 예배당 벽화 작업을 계기로 실력을 인정받고 브루넬레스키의 선 원근법을 최초로 회화에 적용한 걸작 '삼위일체'를 남겼다. 알베르티는 피렌체 예술가들의 이론과 업적을 책으로 출판해 위대한 예술적 성취들을 세상에 알렸으며, 파올로우첼로는 마사초에 의해 처음 시도된 선 원근법을 집요하게 적용하고 실험했다.
르네상스 이전의 이름 모를 석공과 화가들은 정해진 양식에 따라 정해진 주제를 표현해야 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달랐다. 석공에 불과하던 노동자들이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직업으로서의 '미술가'가 생겨난 시기가 바로 이 책에서 다루는 15세기 초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부제는 '미술이 태어난 날'이다.
사실 르네상스가 탄생한 15세기는 끔찍하고 잔인한 시기였다. 14세기에 유럽을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은 피렌체에서만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정도로 끔찍했다. 게다가 피렌체는 베네치아, 시에나, 루카 등의 도시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피렌체 유력 가문들 사이에 벌어진 암투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바쳐야 했다. 전염병, 피와 원한, 오만과 폭력으로 인류에 대한 모든 희망이 무너졌던 시기에 그 희망의 부재를 바탕으로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예술 경향이 꽃을 피운 것이다. 이 책은 어려운 시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기회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
이정원<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백북스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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