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
회사는 '가장 정직한 소비자'인 대전시민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대전의 대표기관으로 대전도시철도공사를 선정하고 물품을 보내 온 것이다.
비록 유제품 회사의 마케팅 수단이었겠지만 의외의 선물을 받게된 것과 우리 공사의 '양심문고, 자전거, 우산'등 고객서비스 시책이 정직한 시민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했기 때문에 대전의 대표기관으로 선정했다는 설명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기증받은 물품은 당연히 우리 몫이 아니었기에 모 지역 복지기관에 우유 전량을 전달하기로 했다(책은 역사 북 카페에 비치했다). 그런데 공사 직원이 복지기관 담당자에게 기증의사를 밝히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바로 돌아온 말이 “플래카드 걸어 드릴까요?”였다.
흔한 말로 '세레머니'를 해주겠다는 얘기인데, 복지기관 담당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부문화의 씁쓸한 단면같아 안타까웠다.
복지담당자는 그동안 기부·기증을 받을때마다 요란한 '기념식'과 사진찍기 등 생색내기 문화에 익숙해 있겠구나 하는 씁쓸함 말이다.
물론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이를 기록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기부에 인색하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학습효과이자 간접경험이라는 점을 모르는바 아니다. 기부에 대한 세제혜택과 급여 공제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그러진 기부문화의 모습은 개인이든 법인이든간에 '기부 스펙 쌓기' 정도로 행하는 저급성을 부인하기 힘들다. 순수한 선의의 기부를 정치색으로 덧칠해 깎아 내리는 것도 문제지만 정치 등 특정 목적을 위해 기부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습관 또한 나쁜 것이다.
사회적 여론이나 지지를 필요로하는 정치인이나 예비 정치인, 선출직 단체장들이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기업의 경우 기부, 봉사 등 사회공헌활동이 곧 기업신뢰도나 지속가능한 성장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깨닫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현상이지만 여전히 면피성 정도로 기업 덩치에 비해 턱없이 인색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가진자, 사회지도층의 빈약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이맘때쯤이면 도마에 오른다. 통계적으로도 따뜻한 손길이 더욱 필요한 경기불황때에 주머니속에 있는것을 기꺼이 나눈 사람들은 오히려 서민들이지 가진 자나 사회지도층이 아니었다.
또한 기부시점이 연말연시, 특정 기간에 집중돼 약속이나 한 듯이 1년에 꼭 이맘때쯤에, 동네 한 바퀴 휙하니 돌듯이, 거창하게 왔다가 휑하니 가버리는 발걸음을 또 보게 될 것이다.
기부나 기증은 돈이나 물품이 최고라는 오래된 관행 때문에 대다수의 금품이 짧은 기간안에 수혜자가 모두 소비해 버리는 경향도 '한국적'이다. 옛말로 고아원 혹은 양로원을 찾는 것이 봉사와 기부의 전부인 듯한 인식이 아직도 널리 퍼져있다.
요즘은 금품 말고도 개인이나 기업이 보유한 재능이나 기술을 기부하고 다양한 수혜자를 대상으로하는 새로운 흐름이 일고 있어 다행스럽다.
특히 '지적실험' 형태인 반전, 평화, 민족·인종·종교갈등 해소, 소수자 보호, 환경, 인권, 분권등 인류의 공통 가치를 위한 논리나 철학 개발, 더 나아가 올바른 정책까지 제시하는 연구소나 단체에 기부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전통적이면서도 미덕이었던, 누가 어려워지면 가족과 친지, 친구, 이웃들이 보완해주고 완충해줬던 시절이 그리운 요즘.
기부문화의 옳고 그름을 이래저래 따져보긴 했어도 제일 좋은 것은 자기 방식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들고, 손길을 내미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플래카드 내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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