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태정 유성구청장 |
원내에 식재된 뉴턴의 사과나무 등이 이색적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마음을 끄는 것은 현관에 전시된 30㎝가량의 놋쇠로 만든 자, 즉 유척(鍮尺)이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닌 물품 중에는 임명장인 봉서, 직무를 규정한 사목, 역졸과 역마를 사용할 수 있는 마패, 그리고 유척이 있었다.
유척은 도량형의 표준 역할을 하였는데 지니고 다닌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 조세를 징수할 때 화폐가 아닌 곡식, 옷감, 특산품과 같은 물품으로 하다보니 눈금을 늘려 부당하게 징수하는 지를 확인하는 것과 형벌을 주는 용구가 규격이상으로 커서 백성들이 괴롭힘을 받지 않도록 길이 측정용 표준기로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도량형의 기준자인 유척은 나라를 다스리는 중요한 표준이 되었다.
요즘 우리사회는 공정하지 못한 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고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공정한 것인가?
아담 스미스의 공정성이론에 근거하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얼마나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느냐는 느낌을 중시하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직에서 공정성은 청렴성과 함께 공직자가 지켜야할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성의 잣대는 엄격해 누가보아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명료하되 구체적이어야 혼란을 줄이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가장 공정성이 중요시 되는 곳은 역시 인사 분야일 것이다.
소위 '몇 년 차'라는 연공서열을 중시하다 보면 자칫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고생하려 하지 않고 복지부동에 빠져 일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요즘 기업에서도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연공주의에서 능력주의로 인사정책이 전환되어 가면서 공공분야에서도 이를 도입해 성과중심 능력주의로의 변화 물결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성과위주의 조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 및 보상분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조직구성원은 자신의 성과에 대해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를 받고 싶어 하며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아담 스미스 이론처럼 남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들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성구에서는 최근 이와 관련해 실적가점제와 특별승급제를 운영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 직원이 평가에 자율적으로 참여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이를 인사에 반영해 실질적으로 승급 등의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 '근평을 잘 받아 승진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야만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6급 담당들도 직접 기안을 하고 계획서를 수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책구상보고회 등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담당직원이 직접 전 직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과 추진의지를 피력한다.
누구든지 하루아침에 오랜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시대도 변했고 공직사회도 변해야 공무원이 구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지녔던 유척이 오늘날은 9급에서 1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무원의 손에 쥐어졌다. 그 잣대를 공정하게 대는 일을 주저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구정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면 책상 앞의 유척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묻는다. 과연 주민을 위한 공정한 결정인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를 위해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