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세 대전충남생명의 숲 사무처장 |
문화재 기본정보에는 국내 천연기념물 지정현황이 소상하게 정리되어 있다. 습관적으로 명칭과 소재지 항목을 가지고 연고지 찾기를 시도했는데, 충남은 꽤 있는데 대전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학술적으로나 관상적으로 가치가 높은 동물이나 서식지, 식물이나 그 자생지, 지질, 광물, 천연물 등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것저것 많이도 지정 받아서 보호하고 자랑도 하는데, 우리지역에서는 문화유산이나 기념물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자랑하는 것에 너무나도 겸손했는지, 아니면 무관심했는지 몰라도 대전에 천연기념물이 없다는 게 놀랄만한 일이다. 기념물에 시대상황에 맞게 적절한 품격을 선사하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 중에는 한 자리에 수 백 년 뿌리를 내리고 살고 계신 어르신 나무가 많이 있다. 우리 단체에서 10년 전쯤 대전지역의 노거수를 모두 조사하고 책자를 발간한 일이 있었다. 이때 서구 괴곡동 새뜸 느티나무가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어르신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골길 한복판에 거침없이 홀로 우뚝 서서 650년 이상을 지켜왔던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대전시 보호수로 지정 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고 만져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런 인연으로 괴곡동 어르신 느티나무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환경단체들의 숲과 하천 관련 기행프로그램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방문한 손님들에게도 우리도시에서 살아있는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또한 대전둘레산길잇기 11구간에 포함되어 있어 구봉산 구간을 참여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 글을 읽으면서 새뜸 느티나무 옆에 놓여있는 평상에서 잠시 쉬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인간의 삶과 함께 더불어 온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유성구 봉산동 대규모 아파트 단지내에 자리 잡고 있는 봉산동 바구니마을 느티나무다. 이 나무는 공식 기록상으로는 300살 이상으로 추정되나, 마을 주민들 중에는 수령이 2000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명확한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아 채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바구니 홰싸움 놀이를 벌이고 있어 목신제, 거리제, 쥐불싸움 등의 전통신앙과 놀이가 계승되는 장소라는 더욱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노거수는 인간이 살아온 날보다도 몇 곱절 오랜 세월을 견뎌내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살아왔다. 주변 모든 것이 변하고 떠났어도 홀로 남아 수 백 년 전과 지금을 이어준다. 또 앞으로 수 백 년을 이어줄 것이다. 세월을 느끼고 겸손함을 배울 수 있다.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은 없고' 라는 건강보조식품광고 카피처럼, 그동안 괴곡동 새뜸 느티나무가 좋은 것을 알고만 있고 표현은 하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지역 단체들이 천연기념물 지정에 노력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대전문화연대와 대전충남생명의숲은 대전시에 앞에서 소개한 노거수 2건에 대하여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청원을 했다. 이에 대전시에서는 문화재청에 다시 공식적으로 요청을 했다. 문화재위원들의 현장실사를 거쳤고 보완자료 요청이 있어 대전시와 함께 자료를 준비하여 제출한 상태다.
이제 남은 절차를 통해 내년 초에는 천연물기념 지정여부에 대한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대전의 어르신 나무가 이번 기회에 천연기념물로 꼭 지정되었으면 좋겠다. 한 자리에서 무던하게 수백년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 나무에 대하여 더욱 품격을 높여 존경하고 보살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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