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곤 객원기자 |
그러나 제월당 송규렴이 벼슬에서 물러나 후학을 가르치던 가학처의 정확한 이름은 '미호신사(渼湖新舍)'로 현대에 와서 이를 통칭해 취백정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 이유는 취백정은 그의 후손 송재희(宋載禧)의 호이기 때문이다. 또 정조임금이 '사호각(四皓閣)'이라는 어필을 내렸다고 하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다.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9호 취백정을 소개하는 문화재청 자료를 보면 '취백정은 조선 숙종 27년(1701)에 세운 미호서원의 부속 건물로, 제월당 송규렴이 제자를 모아 가르치던 곳'이며 '이 건물에는 당시 정조가 직접 써서 내린 '사호각(四湖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송규렴이 쓴 건축 공사의 시작과 끝, 참여자 이름 등을 기록한 상량문이 남아 있다'고 되어 있다.
제월당이 강학처로 세운 건물은 취백정이 아니라 '미호신사'며 정조가 직접 써서 내린 '사호각'은 영조가 1772년에 쓴 것이고 사호각의 '호'자 또한 '湖'가 아니라 '皓'의 오류다.
이같은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영조 48년(1772) 2월 16일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임금이 기로과 출신 4인이 함께 승정원에 있다 하여 어필로 '四皓閣' 세 자를 써서 내리고, 이어서 徐命膺에게 발문을 짓도록 명했다(上以耆科四人, 同在政院, 御筆書下四皓閣三字, 仍命徐命膺作跋文)”고 돼 있다.
또 석북 신광수(申光洙) 연보에도 '영조 48년(1772) 임진 乾隆 37 61 2월, 耆老科 장원으로 선발되다. 승지가 되다. 당시 승지 4인이 모두 耆老榜 출신이 되자, 상이 '四皓閣'이란 편호를 써서 승정원에 걸게 하다'라고 나와 있다.
이상의 문헌자료들로 본 결과 대전의 문화재인 취백정에 관한 오류는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