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남 주필의 스페인 문화산책]-18. 모로코 또다른 미지의 세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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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블랑카 하산2세 이슬람사원 안에 위치한 모로코의 독립을 이끈 왕 모하메드 5세 영묘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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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지(Hajj, 성지순례)에 나선 수많은 이슬람교도들이 메카의 중심 카바신전 주변에 모여든 외신사진을 신문으로 보면서 모로코에서의 이슬람문화를 체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슬람과의 만남은 필자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6월 11일 저녁 카사블랑카시내 시장 골목에 자리한 오래된 호텔방의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새벽 4시15분께 잠결에 누가 웅얼거리는듯한 소리를 들었다. 이 시간에 누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닐테고…. 나지막한 남자의 그 소리는 어제 보았던 이슬람사원 쪽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그 소리가 이슬람사원에 나와 기도를 유도하는 아잔(예배를 위한 코란낭송)소리임을 알았다. 이슬람과의 만남은 그들의 삶이 구차한 데 비해 정신적 느낌은 신선하게 와 닿았다. 일요일인 12일 오전6시 아침식사를 마치고 카사블랑카 시내로 나섰다. 맑은 하늘에는 새가 많았고 공기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모하메드5세광장이 첫 번째 관광코스였는데 휴일인데다 이른 시각이어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비둘기 떼가 이곳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모로코의 정식국명은 모로코왕국인데 지금 국왕은 모하메드6세다.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학 출신으로 12년째 집권하고 있는데 6년 전 북아프리카 이슬람형제단에 의해 암살될 위기도 겪었다. 모로코 역시 빈부격차가 심한데 10%만 잘 살고 나머지는 빈민층에 속한다. 모로코가 속해있는 북아프리카는 대부분 석유가 나오지 않는데 과거 프랑스식민지에 속했다고 한다. 카사블랑카에는 이슬람왕국의 검은 돈이 상당수 투자됐다고도 하는데 모로코의 원자재를 유럽대륙에 수출하는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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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사블랑카 하산2세 이슬람사원의 한 건물 외관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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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5세광장의 시내를 돌아 하산2세 이슬람사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대서양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은 지 1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세계5대 이슬람사원 중 하나로 10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대형사원이다. 오전6시40분을 지나면서 이곳 사원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는데 가슴 한편에 나도 모르게 경건한 기운이 솟구쳤다. 넓은 사원을 기웃거리면서 어디선가 코란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에 빠졌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껴졌다. 카사블랑카 해변 하산2세 이슬람사원에서 본 태양과 종교적 경건함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오전8시40분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도착했다. 약간 등이 굽은 모로코현지인이 우리를 안내했는데 그는 여행가이드로 한때 많은 돈을 모았는데 지금은 그 많던 재산을 탕진해 다시 가이드로 나섰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돈과 사람과의 관계는 어디나 비슷하구나하는 생각에 혼자 실소를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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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타워와 열대식물들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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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연안에 자리한 라바트는 수도가 된지 15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이 있다. 이 라바트는 12세기 베르베르인의 이슬람국가 무와히드왕조에 의해 처음 건설되었는데 프랑스식민지가 되면서 유럽식으로 개발되었다. 라바트에는 2000년 전 로마의 유적이 남아있으며 북부의 언덕에는 500년 전 성벽으로 둘러싸인 아랍식 구시가지가 존재한다. 모졸리라고 하는 곳에 갔었는데 이곳에는 현 국왕 모하메드6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묻혀 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왕릉쯤 되는 곳이었다. 라바트의 왕궁을 지나갔는데 바깥에서 보기에도 매우 큰 규모였다. 경비병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모로코의 기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짧은 시간에 본 라바트 시내는 도로가 잘 나있고 유럽식 주택이 많아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사람들의 형색은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빈부격차는 인간을 가르는 멍에 같은 존재였다.
1박2일의 모로코여행은 필자에게 이슬람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 여기 오기 전 까지만 해도 이슬람문명은 필자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 킬리만자로를 다녀오던 해 뭄바이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는 중 앞의 여행객이 갑자기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고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만나지 못했던 이슬람세계를 스페인과 모로코에서 경험하게 된 것은 이번 여행이 가져다 준 축복이었다.
지난달 세계인구는 70억을 돌파했다. 이중 이슬람교도가 15억에서 16억명이라고 하면 세계인구의 5분의 1에 해당돼 인류 전체를 놓고 볼 때 결코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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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2세 이슬람사원을 지키고 있는 말을 탄 모로코 기병들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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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란 그의 저서에서 인류는 그 시작부터 노마드 즉 여행자적 삶을 살아왔음을 강조하고 정주성(定住性)은 아주 잠깐 인류 역사에 끼어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아탈리는 또 앞으로 상업적 세계화의 가속화가 예고되고 있는데 이는 노마디즘의 특별한 변종으로서 전 세계의 광대한 무질서, 거대한 대중운동, 국경없는 테러리즘의 악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어 미래의 큰 분쟁들은 마지막 정착민 제국인 미국과 세 개의 노마드제국들 간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았는데 그 세 개의 노마드제국으로 시장, 이슬람, 민주주의를 꼽고 있다. 이슬람세계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유랑하면서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내는 그런 존재라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하게 됐다. 사실 유럽의 십자군전쟁에서부터 2001년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이슬람권은 끊임없이 대립해 왔고 지금도 그들의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그 뿌리가 같고 교리도 비슷한 점이 많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출현한 이후 이 두 종교문명권이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준 정신적· 물질적 유산은 실로 장대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로마제국은 물론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기독교를 빼놓고는 그 무엇도 논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중동과 아프리카, 스페인에서 이슬람을 빼놓고는 남는 게 없으며 '초승달과 십자가'로 대변되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은 인류가 마주하는 거대담론 중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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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로코 탕헤르 항구에서 바라본 시가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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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2시10분 다시 탕헤르부두에서 스페인 타리파로 가는 페리호에 승선해 필자는 이 이슬람권과 기독교문명권이라는 두 문명권의 대립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이 두 종교문명권이 서로 화해하고 공존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물론 상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로코에서 체험한 이슬람사원에서의 경건한 느낌은 어쩌면 이슬람문명권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선물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고 마찬가지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본 거대한 가톨릭성당에서의 경건함 역시 기독교문명이 인류에게 준 신의 선물일 것이라고 짐작해 보았다. 기독교와 이슬람, 십자가와 초승달은 서로 대립하지 말고 공존해야 하는 그런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던 모로코여행이었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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