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배 목원대 총장 |
대학생들에게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은 진로문제와 취업문제로 더욱 추운 계절이다. 최근 리서치센터에서 전국의 대학생 133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고민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학4학년생들은 74%가 취업걱정을, 대학1학년생들은 42%가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청춘의 대표적인 고민 대상이었던 연애와 외모 친구관계에 대한 걱정은 고작 10% 안팎을 보여 현실적인 문제가 대학생들을 얼마나 짓누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세상이 항상 반대편 에서만 돌아간다.
어느 날 슬픔에 가득 찬 젊은이가 깊은 산속에 은둔하고 있는 도사를 찾아와서 물었다. “제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뭐든지 다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빠른 길이 있습니까?”그러자 스승이“자네는 평생 한 번이라도 어떤 것에 집중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젊은이는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바둑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사는 다른 젊은 수행자에게 바둑판과 예리한 검을 가져오라고 명하고 젊은이에게 말했다. “이제 저 수행자와 둘이 한 번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두어보아라. 두 사람 다 바둑에는 일가견이 있으니 지는 자의 목을 베겠다.” 그야말로 목숨이 걸린 시합이었다.
젊은이는 바둑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이 그대로 바둑판이 되고 바둑알이 되었다. 그런데 상대편 수행자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젊은이는 그 틈을 타 거세게 공격하였고 수행자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젊은이가 문득 수행자의 얼굴을 올려보았더니 다년 간 수행한 덕으로 지혜와 정직이 배어 있는 얼굴이었다. 목을 내놓아야 할 수행자를 향해 동정심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젊은이는 고의로 실수를 저질렀다. 금세 역전되었고 젊은이의 패색이 짙어졌다.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스승이 말했다. “오늘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 누구의 목도 베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에게 말했다. “인생에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한데 바로 집중력과 동정심이다. 그리고 오늘 너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배웠다”(장클로드 카리에르, 현자들의 거짓말 중에서)
이쯤 하면 20대의 젊은이들에게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자세가 무엇인지 답이 나왔다. 내가 20대였던 수십 년 전에도 세상은 내편이 아니었다. 청춘에게는 젊다는 것 하나 빼면 모든 것이 부족하다. 돈도 실력도 용기도 없을 때가 청춘이다. 하지만 춥고 배고팠던 20대에 한 가지를 선택해 용기를 가지고 집중해 본다면 분명 그들이 30대 40대가 되었을 때 뒤 따라오는 20대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이다.
20대에 나머지 인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 비록 선택한 대학이나 전공과 달라도 괜찮다. 학력에 관계없이 또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대학은 젊음을 같이 나누고 고민하고 탐구하고 길을 찾아보는 곳이다. 모든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전공한 분야의 일만 한다면 세상 그 누가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낼 것인가.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불안하고 넘어질 것 같고 망할 것 같아서 아슬아슬한 나머지 편안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해도 이미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본 곳이다. 집안과 배경이 화려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는 오뚝이처럼 일어선 사람들이 정말 많다. 주변에 좋은 친구나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잘 실천하면 배경이 좋아 희희낙락 하는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의 힘들고 지친 영혼들을 돌아보며 그들과 친구가 되어 준다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필요 충분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된다. 이렇게 되면 20대의 젊은이는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눌 수 있고 남을 동정할 수 있으며 나의 능력이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힘찬 청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우리대학 학생들이 모두 이런 생각을 하며 이 겨울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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