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보기는 이러한 시절에 시집간 여인네들이 친정집 식구들과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 회포를 풀기 위해 고안해 낸 만남을 위한 슬기였다.
한번 시집간 여인들은 시댁일에 파묻혀 친정집을 오가기가 쉽지 않았다. 친정집에 자주 드나드는 것은 친정집에서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시집살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소박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설령 시집살이에 문제가 생겨 친정집에 찾아와 하소연이라도 하면 어쨌거나 한번 시집을 갔으면 그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친정집에 발도 들여 놓지 말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친정부모의 속은 타들어가서 그야말로 검정숯이 되었다.
심지어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릴적부터 민며느리로 들어가 시댁살림을 도맡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방아찧고, 길쌈하고, 농사일과 부엌일, 아기기르기, 시부모 모시기까지 눈코 뜰새 없는 일상이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밤새우기도 밥먹듯이 했다. 그나마도 고된 몸과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일하면서 흥얼거리는 타령조의 노래들과 어떻게 해서든지 가까운 날에 친정집에 다녀오거나 친정집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그리움이었다.
그러므로 시댁과 친정집이 모두 한가한 날을 잡아서 양쪽집의 여인네들이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양쪽집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걸어서 만나야 했기 때문에 양쪽집의 거리를 반으로 잘라서 가운데쯤에서 만났다. 이날은 양쪽집에서 정성을 다해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 그리움의 회포를 풀었다. 아마도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로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그리움과 만남, 기쁨 속에 들떠있었을 여인네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늘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자유로움의 바탕에는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뎌온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깔려 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