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국민 80%가 찬성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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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란]국민 80%가 찬성하는데…

  • 승인 2011-11-28 14:13
  • 신문게재 2011-11-29 21면
  • 황미란 편집팀 차장황미란 편집팀 차장
▲ 황미란 편집팀 차장
▲ 황미란 편집팀 차장
잔칫날이면 약방에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음식 잡채. 부드러운 당면에 온갖 채소와 고기를 넣어 버무려낸 평범치 않은 맛. 예닐곱살 아이가 뿌리치기 쉽지 않은 유혹이다. 그만 먹을것을 채근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한 입, 할머니의 치맛자락 붙잡고 또 한 입, 그렇게 주섬주섬 먹다보면 그날은 영락없이 뱃속에서 전쟁이 났다. 오랜만에 맛본 호사스런 음식 때문일까? 작은 뱃속 사정은 생각지 않은 채 욕심을 부렸던 탓일까.

부글대는 배를 부여잡고 참는 것도 잠시, 아픈 딸을 등에 업고 아버지는 내달리셨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침쟁이 할아버지 댁으로.

웃음기 없는 표정과 무엇이든 찌를 기세로 치켜든 침, 그런 할아버지의 손에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다 내어주고서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뱃속의 평화. 침쟁이 할아버지와의 안 좋은 대면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계속해야 했다.

중학생이 됐을 무렵, 아버지께서는 침쟁이 할아버지 대신 마을 어귀 하나밖에 없던 구멍가게로 내달리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딸의 손에 건네셨던 부채그림의 소화제 한 병. 약국하나 변변치 않던 시골생활, 침쟁이 할아버지와 구멍가게 소화제는 그렇게 어린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됐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등에 업혀 침 맞으러 가던 어린 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듯 배앓이 하는 딸을 업고 당직병원을 찾아 내달린다. 일찍 문 닫은 동네약국을 원망하며.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추진됐던 '감기약 슈퍼판매'가 사실상 무산됐다. “올바른 복약지도가 없으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약사들의 항변에 설득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들이 여야를 초월한 대합의(?)를 도출했다.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 국민 80%의 찬성이 약사 6만여 명의 힘 앞에 무력해지는 순간.

병원 문 닫는 동시에 셔터 내리는 약국들, 유명무실한 휴일 당번제. 소소한 불편함은 둘째 치고, 종합감기약 몇 상자쯤은 선뜻 내어주는 약사들의 모습에서 '올바른 복약지도'라는 명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 눈 감은 국회의원들의 선택도 여론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약사표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국민이 무섭나, 약사가 무섭나 두고보자”며 잔뜩 벼르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앉은자리가 마냥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속보이는 오지랖(?)'에 발목잡힌 '감기약 슈퍼판매'. 이런저런 이유로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도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는 법, 구급약상자에 새로 채워 넣을 약품 목록을 적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황미란·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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