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의 주최로 24일 오후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날치기 국회 비준 무효화와 정부 여당 심판 범국민대회'에서 농민 대표들이 상복을 입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서울광장=김상구 기자 ttiger39@
|
한·미 FTA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이틀이 지난 24일,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축산 농가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자돈 500여 마리를 살처분한 강화규(54·보령)씨 역시 추위에 아랑곳 않고 분주한 모습이다. 2000여마리를 키울 수 있는 축사를 신축하기에 바쁘다. 기존에 사육하던 4000마리와 합쳐 규모를 키우고 생산량을 늘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FTA에 대한 강씨의 대응책이다. 현재 국내 모돈 1마리가 1년에 낳는 새끼는 평균 13~15마리 수준. 유럽에서는 1마리가 1년 평균 22~25마리 낳는 것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이를 끌어올려 가격과 품질에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생각이다.
강화규씨는 “국내 축산업의 생존을 위해 미리 준비해 온 결과”라면서도 “정부가 우리 먹거리 산업을 모두 외국 생산물로 대체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 농축수산물을 지키기 위한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양돈협회와 한우협회 각 지역 지부장들은 각각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에 따른 대책회의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웠다. 일반 축산 농가도 사료를 주고 축사 주변 소독을 하며 분주히 손을 놀렸지만 머리 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중석(58·대전시 서구 용촌동)씨는 “현재도 한우 40여 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한우 가격이 크게 떨어져 사료값도 안나온다”며 “해결책이 뚜렷하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분야는 농축산업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축산, 특히 양돈산업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내산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되고 있는 외국 축산물이 관세마저 사라질 경우 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FTA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는 소식을 접한 축산 농가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영세 축산농가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양은 27만마리 정도. 하지만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는 15년 뒤에는 69만 마리로 늘어나 올해 국내 한우 연간소비량 63만마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우시장을 잠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양돈 농가의 걱정은 더 깊다. 국내 생산원가의 50%에 불과한 미국산 돼지고기가 본격적으로 수입될 경우 중소 규모 농가들의 도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과의 FTA로 이미 유럽산 돼지고기가 많이 수입되면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절반 가격에 불과한 미국산 돼지고기와의 경쟁은 국내 축산농가의 출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윤천섭 서부충남고품질양돈클러스터 사업단 사무국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돼 왔고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으로 인한 경쟁에서 국내산 돼지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영세 농가의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시우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