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기준 및 과정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이란 전 세계 민족의 집단기록이자 인류의 사상·발견 및 성과의 진화기록을 의미하는 것이다. 책·필사본 등 문자로 기록된 것과 지도·악보 등 이미지나 기호로 기록된 것, 비문·시청각자료(음악·영화 등), 인터넷 기록물 등이 그 대상에 포함된다. 올해 현재 세계기록유산은 전 세계적으로 238건이며 우리나라에는 9건이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영향력, 시간, 장소, 인물, 주제, 형태, 사회적 가치, 보존상태, 희귀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세계 역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 정치, 종교 서적 등 기록유산이 한 나라의 문화 경계를 넘어 세계 역사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쳐 세계적인 중요성을 갖는 경우(영향력·Influence)는 물론 독립운동 등 국제적인 일의 중요한 변화 시기를 반영하거나 인류역사의 특정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두드러지게 이바지한 경우(시간·Time)가 기준이 된다.
▲ 지난 5월 한달간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전시회 모습. |
또 세계 역사와 문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던 특정장소(locality)와 지역(region)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장소·Place)와 개인 및 사람들의 업적(사람·People), 세계 역사와 문화의 중요 주제를 다룬 경우(대상/주제·Subject/Theme)도 포함된다.
아울러 야자수 나뭇잎 원고와 금박으로 써진 원고, 근대 미디어 등 형태와 스타일에서 중요한 표본이 되는 경우(형태 및 스타일·Form and Style)와 하나의 민족문화를 초월하는 사회문화적 또는 정신적으로 두드러진 가치가 있는 경우(사회적 가치·Social Value)도 속한다.
특별히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원상태로의 보존(Integrity)과 독특하고 특별히 진귀한 희귀성(Rarity)이 이차적 등록보조기준이다.
등재절차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문화재청장이 대상 유산을 선정한 후 매2년마다 3월말까지 유네스코 사무국에 등재신청 서류를 제출하면 이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심사한다.
▲ 안종철 박사ㆍ현 국가인권위 기획조정관 |
세계기록유산목록에 등재되었더라도 퇴화되거나 보존상태가 위험한 경우, 또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져 등재기준에 미달하는 경우는 목록에서 삭제될 수도 있다.
이렇게 기록유산에 등재되면 보존관리에 대한 유네스코의 보조금 및 기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홍보와 인식 제고를 위한 세계기록유산 로고 사용 및 유네스코를 통한 지속적 홍보가 가능하다는 등재효과가 있다. 또한 CD-ROM, 디지털 테이프와 오디오 CD 같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세계기록유산을 가능한 많은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어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지방자치단체들은 세계유산 등재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일단 등재에 성공하면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나 단체들의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받아 유산 보호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역홍보 및 관광객 유치효과도 커 자치단체장으로서는 매력적인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2009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의 경우 등재 전보다 관광객이 7배 늘었고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이 된 하회마을도 등재되자마자 하루 1만여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 북새통을 이룰 정도다.
대전시 류용환 학예연구관은 “지난해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명성을 얻고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라며 “대전시도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가계기록인 족보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5·18기록물 어떻게 기록유산 됐나
▲ 5·18 관련 신문. |
정부의 계엄포고령 시달과 함께 계엄업무 협조지시, 비상계엄 및 소요사태에 대한 지시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자료는 5·18민주화운동의 배후조종자로 신군부의 군법회의에 회부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판기록과 2004년 무죄선고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시민들이 생산한 성명서와 선언문, 기자들의 취재수첩, 5월일기 등도 역사의 산증언들로 남아 있다.
함께 등재된 일성록은 대한민국 국보 153호로, 조선후기에 국왕의 동정과 국정의 제반 운영사항을 매일매일 일기체로 정리한 연대기 자료다. 일성록이 한국정부가 신청해 등재를 이뤄낸 데 비해 5·18기록물은 이를 위해 조직된 등재추진위원회라는 민간단체가 추진한 결과여서 그 의미가 더 크다.
▲ 5·18 관련 사진. |
등재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기록유산 등재 논의는 2009년 9월에 있었지만 실질적인 준비과정은 그해 12월에 시작돼 2010년 3월 등재추진위는 유네스코 본부에 관련 신청서를 제출했다.
관련 기록물이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데다 분량 또한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불과 3개월 만에 5·18기록물 등재신청서가 마련된 것이다. 자료수집과 등재신청서 작성에 안 박사가 결정적 역할들을 해냈다.
안 박사는 1986년부터 광주현대사사료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5·18기록물들을 직접 수집·관리했으며 광주시청에서도 5·18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자료들을 축적해 짧은 시간 내에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었다.
▲ 5·18 관련 사진. |
기록 원본을 찾기 위해 국가기록원과 국회도서관 등의 동의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보수단체들이 유네스코에 찾아가 '광주시민 학살이 북한 특수부대 소행'이라는 내용의 반대청원서를 내는 바람에 한차례 보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국가자격으로 신청했다면 더 수월할 수 있었겠지만 어려움을 겪으며 배운 것도 많다”는 안 박사는 “신청서 작성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사적 의미'를 밝혀주는 것인데 해당 기록물이 세계 역사와 문화에 무엇을 기여했는지를 잘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박사는 5·18민주화운동이 필리핀, 버마(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민주화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시민들의 노력으로 기록물들이 꾸준하게 지켜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기록유산이 된 5·18기록물의 향후 과제는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한데 모으는 일이다. 5·18 아카이브작업이 그것으로 현재 광주시는 기록물의 보존관리와 교육자료로 활용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안 박사는 “5·18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데서 끝나서는 안되고 광주가 전 세계인의 민주인권교육장이 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관련 자료를 디지털화해 통합·관리하며 연구도 활성화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광주시는 5·18기록물과 편지, 일기, 사진, 메모지 등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들을 기증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글=임연희·동영상 금상진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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