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왼쪽으로, 한쪽으로 몰아서… 그래! 맞았다.”
T자형 스틱을 가진 노인들이 당구공만한 10개 볼의 행방에 따라 탄성과 한숨이 엇갈리는 곳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유성구노인복지관에 마련된 게이트볼 장. 노인들이 열중하고 있는 경기는 당연히 게이트볼 경기다.
▲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지만 노인건강을 위해 게이트볼만 한 운동은 없다는 김장성 회장. 초고령화 시대라는 요즘, 노인정마다 게이트볼장이 세워진다면 건강을 걱정하는 노인이 줄 것이라며 더 많은 게이트볼장이 생기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
“게이트볼 자랑이야 끝이 없지요. 한번 배우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쳐도 지루하지 않고, 격하지 않으면서도 전신운동이 되죠. 작전을 잘 짜야하기 때문에 두뇌운동까지 되니 치매예방에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을 겁니다.”
김 회장은 그밖에도 따로 운동복이 필요 없으니 경제적이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할 수 있으니 가족 3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경기는 게이트볼 뿐이라고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유럽의 크리켓 경기에서 착안해 일본에서 만든 게이트볼은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 도입됐고, 대전에는 1983년께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5인 1조 2개 팀이 순서를 정해 스틱으로 공을 때려 3개의 게이트를 통과시킨 뒤 중앙에 세워진 골폴(골대)을 맞춰 점수를 얻는 것이 경기 규칙이다.
공직에 있다 정년퇴임한 후 62세부터 9년간 게이트볼을 하고 있다는 김 회장은 게이트볼을 알게 된 후 인생이 활기차게 변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여행다니거나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며 보내는 게 지루해지던 어느 날, 김 회장은 도로 옆에 있는 게이트볼장을 보게 됐고 그 곳에서 노인들이 게이트볼 경기를 하는 것을 본 후 '아, 저걸 하면 내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이후 3년 동안 김 회장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게이트볼 연습에 투자했고 65살 되던 해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 자격으로 일본서 열린 국제대회에도 참가했다.
“나이 60살이 넘어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종목이 또 뭐가 있겠어요? 정말 뿌듯했지요. 주로 방에만 있던 노인들이 밖에 나와 햇볕 쬐면서 운동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친구들도 제 권유로 입문해서 건강이 좋아졌어요.”
술, 담배가 늘어가던 친구들이 게이트볼을 접한 후 더 건강해진 것을 보면 기쁘다는 김 회장은 전국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던 유성구 게이트볼팀들의 대회 성적이 요즘 부진하다며 아쉬워했다. 게이트볼이 대전에서 유독 노인경기로 취급받으면서 게이트볼 동호회원들이 너무 노령화된 게 원인인 것 같다고.
“국제대회 나가보면 40~50대는 물론이고 초등학생 팀도 많습니다. 저변이 확대된 건데, 게이트볼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건강한 노년을 위해 게이트볼 경기장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회장, 게이트볼로 건강하고 활기찬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그의 경기는 아직 한창이다.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 유성구게이트볼연합회 김장성 회장은?
공직 퇴임 후 2002년에 게이트볼에 입문해 ‘유성구노인복지관게이트볼팀’ 소속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3년 전부터는 유성구게이트볼연합회 회장직을 맡아 게이트볼 동호인들의 권익향상과 저변확대를 위해 힘써 오고 있다.
2005년 ‘연합회장기 전국게이트볼대회’에 유성구 대표로 참가해 우승한 후 국가대표 자격으로 2005년 ‘전 일본 스포레크대회’ 게이트볼 부문 우승을 거머쥐었고 국무총리배 게이트볼대회, 대한노인회장기게이트볼 대회 등 다양한 대회에서 유성구 대표선수로 출전해 팀의 우승과 준우승을 이끌었다.
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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