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영 출판사 따뜻한손 대표ㆍ전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
'계백'은 40년 넘게 백제를 통치했던 무왕 시절부터 문화대국 백제가 한반도에서 영원히 사라진 의자왕 말년까지 60년을 배경으로 삼은 시대극이다. MBC가 '삼국열전'을 기획하며, 고구려와 신라는 주몽과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백제는 비운의 장군을 대표주자로 선정한 것은 그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 결코 유쾌할 리 없는 처사지만, 한 국가의 흥망을 다시 반추하게 하는 역사물로서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편파적 기술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에 나타난 백제의 마지막 통치자들의 풍모는 오히려 한 시대를 능히 개척할 수 있을 만큼 걸출하다. “위풍이 뛰어나고 지기가 호걸다웠다(風儀英偉志氣豪傑)”거나 “용맹스럽고 담대하고 결단력이 있었다(雄勇有膽決)”는 게 무왕과 의자왕에 대한 김부식의 총평이었다.
선대왕들보다 기골이 장대하고 치세도 더 길었던 두 부자(父子) 모두 기울어가는 역사의 축을 바로잡지 못하고, '어버이를 효도로 섬기고 형제들과 우애롭게 지내' 해동증자(海東曾子) 칭호를 듣던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가 포로 신세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한 나라가 융성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하지만, 쇠락하는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배층이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는 데도 번영한 경우는 역사에 없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지정학적 상황을 명과 청의 세력이 교차하던 조선 중기나, 구한말과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우리의 '혈맹'인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아시아 올인'을 선언하며 장악력을 강화하고, 우리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인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돌돌핍인'의 발톱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일사불란하게 대응해도 힘이 모자랄 판에, 나날이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남북으로 체제가 갈라진 데다 지역감정으로 동서가 쪼개진 것도 모자라, 좌우의 이념 대립·상하의 계층 대립·노장청의 세대간 대립까지 5분 10열 양상이다.
한·미 FTA를 놓고 수년째 벌어진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세력의 다툼은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갈등과 대립의 전시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소속이 바뀐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들은 갈등의 중재자라는 시대소명을 저버리고, 입장에 따라 임기응변식 대응으로 갈등을 증폭하기에 바빴다.
국회에서 통과된 뒤에도 후속대책을 마련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데 골몰하기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루탄을 문제 삼아 테러라고 주장하는 여당이나, 비공개 날치기를 문제 삼아 의회 쿠데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이나 정치력 부재·협상능력 부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지난달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은 우리나라의 정당제도가 민심을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금치산 선고였다. 보수진영의 신당 추진이나 진보진영의 통합 모색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다는 엄중한 경고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보든,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계경제의 추세를 감안하든 지금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앞세워야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전환기다. 사리사욕을 앞세우고 당파적 이해를 우선하는 기성정치인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기에는 너무 위험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민의를 담아내는 데 실패한 양당제도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상생과 배려를 통해 더불어 행복한 복지공동체를 이룩하는 데 우리 스스로 앞장서야 한다. 그 첫 걸음은 빠른 사람보다 바른 사람을 추천하는 정당을 지지하고, 약삭빠른 후보 대신 올바른 후보를 대표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이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맑고 밝고 따뜻한 사회를 건설하는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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