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손맛은 또 온정이 되어 흐른다. 김장 최적기를 맞아 오늘도 파문처럼 일렁이는 김치 인정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불쑥 신출(新出)한 것이 아니라, '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했듯이 전래의 DNA 파워 때문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분명히 지금은 김장이 '1년 계획'인 시절은 아니지만 소외계층에는 그렇지 않다. 또한 사랑의 김장 봉사가 잉여물 잔치로 보이는 '눈'과 김장을 정성스레 건네는 '손' 사이의 지배적인 사유가 같을 수 없다. 앞치마 두르고 배추에 양념소를 버무리는 저 사진을 보라. 대전시자원봉사연합회와 대전봉사클럽 회원 등 1000여명이 도열해 5만㎏의 김장을 담그는 행렬로 엑스포남문광장은 일대 장관을 이뤘다.
이런 과정은 '타산적'인 것이 '합리적'인 경제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선한 것의 시작과 끝은 위장의 쾌락이다”라고 에피쿠로스가 그랬던가. 하지만 빵이 말씀보다 절실한 이웃들에게 먹을거리는 쾌락주의도 영양주의도 아님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솜씨보다 정성을 더 담뿍 담는다. 우리 주변에는 의식주를 식·의·주로 불러야 할, '김장이 반양식'인 이웃이 아직 많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월동 종합대책에 '김장대책'을 넣은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실천이지만 말이다.
▲ 사진=김상구 기자 |
▶그만큼 전통식품인 김치를 매개로 상호부조의 뿌듯한 미풍이 재현된다는 증거다. 일부에서는 김치가 전통식품이 아니라고 한다. 현재 형태의 김장은 200년 남짓 됐다는 것. 배추가 비교적 근대인 1880년대 후반에야 보급됐다고 보면 김치가 근대식품 브랜드라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래도 김치 아이콘을 매개로 한 거국적인 인정 행렬만은 대대로 전승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국민이 만든 기적, 태안 유류사고 자원봉사자 123만명 기록도 우월한 한국적 유전자(=K-DNA)의 힘과 무관치 않다. 자원봉사자 전국 630만명, 대전 19만명, 청주 5만명 돌파도 동종 유전자의 발현이다.
이처럼 우리에겐 분열의 유전자, 증오의 DNA, 거짓의 염색체에 맞설 선량한 유전자 3형제가 있다. 첫째는 사랑방 DNA인데, 이에 힘입어 올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달성이 목전에 다다랐다. 둘째는 공동체 DNA다. 유엔에 사무총장을 비롯해 110여명의 한국인이 근무 중이다. 셋째가 한창 연탄봉사와 김장봉사로 전국에 번져나가는 까치밥 DNA다. 좋은 유전자들이 빛을 발하는 사회는 아름답고 따뜻하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