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규모를 자랑하는 카사블랑카의 Hassan 2세 이슬람 사원 모습. |
지브롤터해협을 떠나 아프리카 모로코의 탕헤르에 도착한 것은 여행 4일째인 10일 밤 8시30분께였다. (이곳 시간은 스페인보다 1시간이 더 늦다) 탕헤르(Tanger)는 오렌지를 뜻하는 탱자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 이곳에 탱자와 엇비슷한 오렌지가 많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탕헤르에 도착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글자는 'Maroc' 이었다.
모로코(Morocco)가 아니라 'Maroc'이라는 이름이 탕헤르항구의 승객 수속대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속으로 마록이 모로코라는 서양식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는 추측을 하면서 마록이 모로코냐고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말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아주 큰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으면서 지중해와 대서양에 면해 있는 모로코는 사하라사막의 일부를 끼고 있어 남한 면적의 7배에 달하는 실제로 광활한 땅을 지닌 국가이기도 하다. 가이드가 여러 번 강조한 대로 숙소는 스페인에 비해 많이 낡았으나 호텔 밖의 동네마당에서는 밤늦게까지 아이들의 농구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우리가 놀던 모습과 비슷해 정감이 느껴졌다. 밤하늘에는 빨간 바탕의 별이 그려진 모로코국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5시40분께 서둘러 일어나 호텔주위를 산책했다. 도로가 넓었고 주위에 나무가 많아 온통 새들로 가득했다. 항구도시라 갈매기도 보였다. '살람말라이 꿈',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면서 비로소 이슬람세계에 왔음을 실감케 됐다.
▲ 페스의 거리 상점에 진열된 다양한 수공예품. |
페스는 우리의 경주쯤에 해당되는 고대도시로 1000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가이드가 들려주었다. 사진작가들이 페스의 피혁 염색장을 작품사진으로 많이 찍어 유명해진 도시가 페스인데 1000년 전에 설치한 상·하수도는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다.
21세기인데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중세에 살고 있는 것이다. 페스는 또 장인(匠人)의 도시이기도 한데 공예학교가 있어 수공예품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11세기에 가장 번창 했다고 한다. '테버리'라고 하는 천연가죽염색공장을 실제로 가 보았는데 작업환경이 너무 열악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 페스의 유명한 천연가죽염색공장 '테버리'. |
'국경'이라는 의미의 페스에는 25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한데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도시라고 한다. 거리에는 히잡 또는 차도르, 부르카를 두른 여인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이슬람권은 여인들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문화가 아직도 존재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세계가 이슬람권이지만, 전 세계 무슬림 수는 15억명 또는 16억명으로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막강한 종교권이다. 뿐만 아니라 학술, 문화, 예술 등에서도 인류에게 많은 업적을 남긴 이슬람권은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 적지 않은 문명권이라는 것을 모로코여행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지중해성의 따뜻한 기후를 지닌 모로코는 축복받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물가가 스페인에 비해 100배가 높고 국민의 60%가 문맹인 후진국의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페스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옛시가지와 시장을 둘러본 후 밀과 올리브를 재배하는 농업지대와 양떼들이 노니는 야산을 지나 해안가에 위치한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50분이었다.
▲ 영화 '카사블랑카' 포스터(1942년 작). |
릭과 일사로 열연했던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두 미남·미녀배우의 얼굴이 포개진 영화포스터는 젊은 시절 누구에게나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던 로망의 대상이었다.
한때 사랑했던 릭과 일사로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일사의 남편을 나치로부터 도피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고 둘은 다시 헤어진다는 줄거리의 이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얀 집' 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는 베르베르인의 어항이었으나 1400년대 해적의 소굴로 자리했다. 이 해적들을 포르투갈인들이 소탕하고 도시를 건설했으나 1757년 모로코 술탄에게 점령됐다.
▲ 서양화가 한인수 作 '모로코의 여인' |
그러나 크게 볼거리도 없었고 다만 호텔주위의 시장을 왔다 갔다 하는 눈요기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밤 8시를 넘겨 상점가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마침 호텔 근처에 모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 모스크에는 사람들이 삥 둘러서 있었고 그 속을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필자의 눈에 들어온 이 풍경은 너무도 평화롭게 느껴졌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뒤떨어졌지만, 이들의 평온한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에서 사온 체리를 호텔방에 가져와 일행들과 소주파티를 열었다. 체리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몸은 피곤하고 호텔은 탕헤르에서처럼 낡았지만 공기가 무척 평온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의 표정도 그렇게 느껴졌다.
이슬람의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고 썩 화려하지도 않지만, 모로코에서는 왠지 깊은 문명의 냄새가 감지되었다.
이슬람세계의 사람 사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화려한 문명과 대조되는 대비감에서 오는 감정인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유럽대륙과는 상이한 느낌이 다가왔다.
동부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를 찾았을 때와도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미지의 세계 모로코와의 만남은 그렇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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