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환 대전시사회복지관협회장 |
신기한 것은 선거 전일까지만 해도 복지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박원순씨를 향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다. 박원순씨에게 빨간색을 씌우려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고, 마귀세력이라고 극언을 퍼붓던 분도 별 이야기가 없다. 박원순씨가 당선되면 수도 서울이 공중분해라도 될 것처럼 설레발을 떨던 언론도 조용하다. 호흡을 고르느라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핏대를 세우고 박원순 불가론을 외치던 때와는 사뭇 달라서 이채롭다.
사실, 박원순씨가 내세운 것은 별 내용도 아니다. 모든 시민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확인한 수준에 불과한 것들이다. 시민이 중심에 선 각종의 정책을 나열한 것들이다. 전시성 사업은 그만두고 가난한 시민들을 보듬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특히 일부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던 급식을 모든 아동에게 똑같이 제공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찌 이 말이 그리도 위험한 말이고, 나라를 망가뜨릴지도 모르는 말로 들렸을까? 애들에게 밥 좀 먹이자는 말에 웬 복지망국의 그림이 연상되었을까?
복지가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헌법적 가치이고 사회보장기본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제34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이어서 국가의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증진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에도 사회복지서비스의 기준으로 보편성과 형평성이 명명백백하게 입법되어 있다.
이렇듯 당연하고도 명백한 것을 논쟁의 소재로 삼는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입으로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국민을 잃어버린 사람들 때문이다. 솔직히 이들도 보편적 복지가 국가재정을 거덜내지 않는다는 점과 오히려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강화하고 소득의 재분배효과를 제고한다는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모적 논쟁을 키워가고 있는 것은 그 논쟁 속에 자신의 이익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요즘 복지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일하는 사람에게만 복지서비스나 급여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싸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 말도 구조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막힌 이야기에 불과하다. 누구나 잘 아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일하지 않고도 걱정 없이 먹고 살 방법은 없다. 문제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경우다.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일할 능력이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런 사람에게 무턱대고 책임적 존재가 되라고 하는 것은 몽매한 일이다.
이런 사정을 두루 감안한 아이디어가 보편적 복지론이다. 모든 대상에게 모든 서비스를 똑같이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복지서비스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장하고, 재정지출은 토건중심에서 벗어나 우선순위를 사람에 맞추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의 핵심적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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