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태 '작품 78'
▲ 신현태 '작품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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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현태는 팸플릿에 게재한 자신의 행위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대전 78세대전 전시장 한 모퉁이 장소를 선택해 베니어 화판으로 구조물을 제작했다. 베니어 합판 위를 보면 '들어가는 입구'이라고 쓰여 있으며 화살표로 입구를 표시했다. 입구로 들어가면서 관객들은 점점 좁아지는 공간의 변화 때문에 몸을 굽힐 수밖에 없는 구속을 받게 된다. 급기야 관객의 몸은 거의 웅크려져서 총총걸음으로 출구로 나오게 계획된 작품이었다.
▲이종봉 '태(胎)'
이종봉은 에스키스 작품을 실었다. 실제 작품은 나무 판 뒤에 못을 박아 못이 앞으로 튀어 나와 있어 시각적으로는 인간의 원초적 고통이나 인내 등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종봉은 당시 강원대학교 사범대 미술과 4학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78세대전에 참여했을까? 이유는 고향이 조치원이어서 목원대 멤버들과 교류하길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스터디 참여는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대전 78세대가 지닌 관점을 교육 받으며 출품했던 멤버였다고 한다.
팸플릿에 자신이 휘갈겨 쓴 작품의도를 보면 '모태에 의한 인간출발과 인간 이전의 자연출발을 인식하는 것의 피상적 형태를 (중간 알 수 없음) 붙이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 글 오른쪽으로는 '강원도 춘천시 문교동 48반 1-2/ T 2-8323(강원대학교 사대 미술과 4년)'이라고 써 놓았다.
자유로움이 묻어나는 미완성된 아이디어 스케치와 자신의 개인적 신상까지 팸플릿에 실었다는 것은 당시의 전통적인 완성품에 대한 파격적인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장금자 '관계'
장금자의 작품을 보면 완성과 미완성 그리고 보존성에 대한 논리로 다가온다. 장금자 본인도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과 재해석을 갖고 있었다고 강정헌은 말한다. 작품을 보면 종이에 스케치를 하고 일부는 실물 천을 콜라주 했으며 또는 실물 천과 연장해 스케치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떤 부분은 천 조직에 인쇄된 문양을 채색해 놓았으며, 어떤 부분은 흑백으로 명암을 처리해 놓은 곳도 보인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대전 78세대가 고민하던 새로운 예술론과 방법론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정상희 '흔적'
정상희는 여러 가지 성향면에서 과거의 미적 지향에 대한 탈피는 동감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에서는 재료의 확장보다는 전통적인 유화 방식으로 표현해 놓았다. 작품을 보면 캔버스에 발바닥 자국을 리얼리티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시 강정헌이 느끼기로는 대전 78세대의 탈 평면적 확장에 대해 적극 인정한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작품에 수용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움도 있었다는 것이다. 정상희와 강정헌은 '인간의 흔적'이라는 동일한 주제로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법론의 차이에서 정상희의 작품은 시각적 리얼리티로 평면을 사용했다면, 강정헌은 이우환의 '만남의 현상학 서설'이나 메를로 퐁티의 '눈과 정신'에서 착안한 장소성과 상황성, 선택성이라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지석철 '이것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지석철의 경우 화장실 남자 변기와 주변 타일을 그린 작품인데, 줄자를 이용해 화장실 타일과 변기를 정확히 잰 후 캔버스에 리얼리티로 재현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78세대 전시장어느 사각 공간의 모서리에 새워놓았는데, 관객들에게 리얼리티와 일루전에 대한 문제를 증폭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지석철은 목원대 73학번 1회 였지만 군입대로 3년이 늦어져 주류 78세대 멤버들보다는 1년 늦은 학년으로 다녔다.
때론 후배들 작품보다는 파격적인 면에서 미흡한 부분도 있었지만 75학번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적극 동조해준 선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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