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사실 예술과 기술을 본격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건 현대에 이르러서다. 기술은 '쓸모'를 따르고 예술은 '쓸모'를 버린다는 말도 있지만, 자투리 천을 이어 붙인 전통조각보도 충분히 예술적일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최근 문화계에서 일고 있는 지각변동은 예술과 기술이 서로를 적극 포용할 때 더욱 풍성한 성과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무대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까지 1억명이 관람했다는 '태양의 서커스'의 경우 올해 매출액만 10억 달러가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거리에서 불을 뿜고 죽마를 타던 곡예사 기 라리베르테(Guy Laliberte·52)가 거의 절멸상태에 놓였던 서커스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며 세계 공연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 데에도 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서커스에 스토리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춤, 체조, 음악, 의상, 조명 등 다양한 요소들을 녹여 고급스러운 종합예술로 재탄생시켰다. 동물이나 스타곡예사 없이도 충분히 스펙터클한 서커스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메카트로닉스에 기반한 표현기술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무대를 만들 때 목수가 합판으로 일정한 형태를 짜고, 거기에 색이나 천을 입혀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공연의 내용도 감독의 직관이나 배우들의 컨디션에 좌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센서, 액추에이터, 제어, 통신기술 등을 활용한 최첨단 표현기술로 무대는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한층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배우의 표정과 음악, 무대장치와 조명 등이 100분의 1초 간격으로 합을 맞춰 관객들의 오감을 극대화시키는 표현기술. 이 표현기술이 구현된 스마트 무대장치가 공연예술의 규모와 성격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CMT개발단에서도 첨단 융복합기술을 적용한 문화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CMT(Culture Mechatronics)란 CT분야 중에서도 하드웨어 기반기술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Culture'와 'Mechatronics'의 신조어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통합한 학문 분야인 메카트로닉스가 그 이름에서부터 융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 기계·제어·전자기술 등을 융복합해 하드웨어 기반의 문화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중천', '적벽대전', '최강칠우' 등의 영화 속 촬영무대에 CMT가 쓰였고, 내년 1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무대와 '2012 여수엑스포' 무대에도 CMT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 무대장치에는 3D 와이어 플라잉 시스템도 선보인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잡아당겨 움직이던 와이어 신을 이동자의 키와 몸무게, 이동 궤적 등을 미리 시뮬레이션한 후 현장공연에서는 타임시퀀스에 따라 완벽하게 움직이고 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사람이 조작할 때보다 시행착오가 적고, 무엇보다 무대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높다.
CMT개발단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개발 성과는 전자마루. 자기인식 장치를 내장한 전자블록을 레고 식으로 결합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편리하다. 또, 한 번 쓰고 버리거나 해체 후 재 구축해야 했던 기존 목고 식 무대와 달리 얼마든지 재 사용 가능해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문화와 메카트로닉스라는 상호 모순돼 보이던 요소들을 과감히 융복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기원 CMT개발단에서는 전자마루의 디자인컨셉트를 확립해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세계 최초로 상품특허를 받아 현재 실용화를 진행중이다.
이제 'Inter'나 'Multi'로는 부족해졌다. 단순 조합을 넘어, 서로 넘나들고 소통하며 완전히 혁신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시대가 됐다. 그 공간은 문화와 기술이 융합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삶을 펼칠 수 있는 신세계가 될 것이다.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융복합으로 더 넓어질 멋진 신세계! CMT가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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