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범 대전시설관리공단 이사장 |
기업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직원들의 생계도 책임질 수 없게 되었을 때 계속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함께 남아 있을 직원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제적인 능력이 모두 없어 졌을 때 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남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사회에 영향력이 있던 직위에서 물러났을 때 아니면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났을 때 자신과 함께 있어줄 주변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솝의 우화 중에 밀림의 왕 호랑이 근처에는 어떤 짐승도 얼씬하지 못하는데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숲속에서 만났다. 여우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에게 여우가 소리치기를 “너는 나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하늘의 임금님께서 나를 모든 짐승들의 우두머리로 인정했는데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그것은 하늘의 임금님 뜻을 거역하는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라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 그러면 어디 한 번 그 증거를 내놓아 보아라” 하니까, 여우가 말하기를 “그래, 그러면 나를 따라와 보아라” 하면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여우가 앞장서고 그 뒤를 따르는 호랑이가 함께 숲을 지날 때마다 바위 틈에서 나타난 토끼도 달아나고, 늑대도 피해서 도망갔으며, 심지어는 곰도 슬슬 눈치를 보면서 달아나지 않는가? 한동안 여우를 따라 숲속을 돌아다닌 호랑이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모두 도망가는 것을 보고 여우가 짐승들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우가 슬쩍 호랑이 눈치를 살피며 “어때? 이젠 나를 짐승들의 우두머리로 인정하겠지?” 하면서 숲속의 왕처럼 행세했다는 우화가 있다.
우리들은 호랑이와 같은 배경을 갖고 살면서 그것이 자신의 참모습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힘과 권력, 그리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학자의 질문에 즉각 대답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착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호랑이의 허상을 등에 업고 있는 것과 같은 우리들의 인생 종착지에서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우리 사회에는 모범적인 공적을 쌓은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 이름으로 표창을 하고, 공적패를 주기도 하며 감사패를 전달한다. 또 초등학교 학생에게도 성적이 우수하면 표창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으면 그것을 인정하는 증표를 준다.
그러면 이렇게 베풀고 인정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의식의 바탕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것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주고 싶어서 진솔한 자신의 모습으로 주변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었고 진정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기 때문일 것이고, 종국에는 그래도 살만했고 잘 살았다는,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기에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고, 언제나 내게 올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만이 성공하는 삶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었다는 자만심도 버린 진솔한 인생을 가꿀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心)을 얻기(得) 위해서 덕(德)을 쌓으라는 현인들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노력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왜 사세요?”라고 묻더라도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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